| "작가는대변자 역할 하는 것, 그림은 제 숙제죠" [신문화탐색] 회화·조소 김광례 작가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20년 08월 30일(일) 1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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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그의 첫 개인전에서 작품을 처음 접했다. 지금 기억을 되돌려보면 다소 충격적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촌 최대 비극으로 꼽히는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소재로 한 작품 ‘그대 이제 잘 가라’ 때문이다. 두개골과 뼈들이 가득 실린 배로 표현된 이 작품은 파격적 주제와 그 실험적인 성격으로 인해 광주 화단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두개골과 뼈들은 작가가 직접 제작한 것들이다. 외형상 두개골이라는 섬찟함이 먼저 다가왔던 분들이라면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작가의 작품으로 인해 예술의 소재는 어디까지일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같은 작가의 작품은 단순하게 섬찟함을 안겨주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죽음과 애도라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취지였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예술적 비용이 소요되는 데 이를 기꺼이 감수했다. ‘그대 이제 잘 가라’는 전시 때마다 600∼8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작품을 지난해 5·18기념문화센터 전시 때 선보였다. 당시 창고에 보관 중이던 이 작품을 꺼내 5년여 만에 선보인 것이어서 호응을 얻었다. 이 작품은 규모 때문에 DS갤러리에서의 첫 전시 때를 포함해 전시를 할 때마다 갤러리 문짝을 부수고 전시실에 넣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으나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어찌해 죽음과 애도, 위무를 위한 메시지를 던지게 됐을까가 궁금했다. 폭우가 생채기를 남긴 지 채 하루가 멀다하고 태풍이 몰려오는 날, 비가 내리던 8월10일 오후 북구 본촌동 소재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창고를 작업실로 꾸민 이곳에 머문 지 5년째가 됐다고 한다. 공간을 분할해 작업을 펼친다. 모든 장르를 모두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회화와 조소는 물론이고 탱화 등에 이르기까지 망라되고 있다. 회화와 조소에 걸쳐 꾸준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는 광주 출생 김광례 작가의 이야기다.
김 작가는 일찍부터 화가의 꿈이 무르익었다. 하지만 특정 주제 역시 빨리 결정된 경우에 속한다. 보통 ‘예술가를 언제부터 꿈꾸었냐’고 묻기 마련이지만 작가는 예술가의 꿈과 가족의 비극이 시기적으로 멀지 않았다. 2∼3년 정도의 간극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로 잠시 빠져들었다. 그는 지극히 사적인 내용이어서 밝히기를 꺼려했지만 맥락상 중요한 내용이어서 집중해 들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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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작가의 집 근처에서 매몰사고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잠시 내려왔던 언니를 포함해 언니의 친구 등 8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를 겪었다. 매몰 당시 흙 밖으로 나온 언니의 발을 생생한 기억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 사건은 지극히 개인적 아픔이자 슬픔이지만 그는 훗날 작업에서 이를 피하지 않고 주제의식으로 발현한다. 건들기만 해도 아팠을, 트라우마가 됐을 비극을 또 다른 희망으로 치환해낸 것이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예술가이기 때문에 개인적 아픔에 메이지 않고 사회적 아픔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작가는 대변자 역할을 하는 것이죠. 직설적이지 않으면서, 뒤틀지 않고 보여줘야 합니다. 저는 예술을 알든, 모르든 감동을 받고, 공유하며 치유와 위로를 해 주는 게 작업의 모티브예요. 가족을 포함해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 속에서 죽음에 대해 접해왔죠. 그런데 죽음이 꼭 슬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의 작업적 모토를 이해할 수 있는 언급이다. 언니로부터 출발된 죽음의 문제는 작가가 특정 주제에 몰입하게 된 첫 출발선이 된 것으로 이해됐다. 작가는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운 중학교 시절 언니를 담은 유화작품 ‘아버지와 새’를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휴대폰에까지 담아둔 그 작품을 잊지 않고 소개했다. 앞서 폭우와 태풍을 살짝 언급했던 이면에는 매몰이 가져다주는 상징성에서다. 그의 기억을 떠나지 않는 이미지와 언어로 고착된 듯 보였다. 매몰만 나오면 트라우마가 여전하다고 밝힌다.
이처럼 작가는 운명처럼 껴안고 가야할 죽음의 기억을 천착하며 그로부터 애도와 위무, 더 나아가 희망까지를 예술의 범주 안에서 추출해낸다. 특정 주제로의 천착은 특정 이미지로 한 작가를 고정화시킬 우려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묻자 개의치않는 듯한 모양새다. 주제의 제한은 있겠으나 장르적 제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답변이다. 얼마든지 다양한 장르들을 통해 타개해나갈 수 있다는 반응이다. 여기서 작가의 뚝심어린 결기를 엿볼 수 있었다. 얼마든지 상업적인 작품으로 방향을 틀 수도 있겠으나 이는 ‘본연의 예술적 정체성보다는 배만 불리는 것 아니냐’고 일갈한다.
작가적 의식을 강조한 말로 들린다. 다만 그는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어서 다른 예술가들과 다른 점이 아닐까 싶었다.
"‘왜 너는 그림을 그리냐’고 묻자 선배가 숙명 같아서라고 말했지만 저는 저의 숙제여서라고 답했죠. 제 작업은 애도라는 메시지로 모든 주제의 퍼즐을 맞춰나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퍼즐을 맞추는 것이 숙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보구요. 아울러 죽음이 애도나 상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죽음과 희망이 함께 있다고 말이죠."
그는 죽음에 빗대 어둠을 더해 설명을 지속해 나갔다.
빛에 어둠이 있어야 하듯 어둠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어둠을 노래해야 빛이 생긴다는 논리로 이해됐다. 작가는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나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 화병이 난 사람들 등 그분들의 어둠을 만져 빛으로 가게 하는 역할을 자임할 뜻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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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주제의식이 선명한 작가의 작품은 철저하게 스토리를 안고 있다. 가족의 비극이라는 스토리를 담고 있는 게 ‘아버지와 새’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에 투영된 스토리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첫 전시의 메인을 형성했던 ‘그대 이제 잘 가라’도 그랬고, 도마뱀이 등장하는 ‘추억의 노래’(Song of Memories)나 5·18민중항쟁 희생자를 형상화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등을 보더라도 결코 가볍지 않은 스토리들이 투영돼 있다. 작가는 한때 필리핀에 머물렀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로 필리핀에서 지냈다. 직장때문에 필리핀에 거주할 당시 국내에서 가져갔던 파리 끈끈이에 붙어 말라 죽어있던 도마뱀의 기억을 떨쳐내지 못해 국내로 돌아온 이후 작업한 작품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역시 오월 영령을 애도하고 위무하기 위해서였지만 그 극적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방향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그의 회화들은 붓으로 이뤄진 것은 없다. 모두 나이프로 긁어서 하는 것들이 태반이다. 그 결들이 살아 꿈틀대는 듯하다. 여기다 우울하고 칙칙하게 색감들이 구사될 것처럼 보이지만 컬러의 색감을 구사한 작품은 제법 눈에 많이 띈다. 어둠을 드러내기 위해 컬러가 있어야 하는 이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는 도식화한 시각으로 늘 탈주하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제주도 숨골을 형상화한 작품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제주 4·3항쟁 유적으로 슬픈 역사의 현장인 다랑쉬 동굴의 숨골에 집중했다. 밀물과 썰물 때 드러
나는 둥근 혹은 사각 모양이 숨골이다. 그는 둥근 혹은 사각 모양이라고 하는 형태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용암이 굳으면서 쪼개진 틈을 주목했다. 여기서 평이한 시각 보다는 작가 특유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작품을 창출하는 데 노력을 쏟고 있는 그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
9월1일부터 29일까지 오월미술관에서 ‘망각의 강’이라는 타이틀로 한 전시를 앞두고 있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로 기록되고 싶은 지를 물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죽음과 애도의 메시지 뿐만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제 작품을 관람객들이 현재보다 더 잘 이해해 주기를 바라죠. 또 깊이있게 자기세계를 가져가며, 꾸준히 내실있는 작업을 펼치는 작가로 평가받았으면 합니다.

2026.10.24 (토) 19: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