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제88호=사진집단 ‘카이로스’)시련이 아무리 크고 깊어도 일어서려는 힘을 당할 수는 없다. 인간은 늘 그렇게 어려움을 딛고 다시 서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오곤 했다. 그것이 사람의 삶이고 오늘의 문명 아닐까?
아마도 그런 극복과 인내의 유전자를 더 많이 타고 난, 훨씬 더 강인한 힘을 내재한 민족이 또 우리 민족이 아닐까? 결코 녹록하지 않은 자연조건은 물론, 지정학적 조건까지 더해져 자연재해에 외침 등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아 그것을 이겨내는 힘이 아마 우리에겐 뼛속 깊이 각인돼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의 풍요로움과 번영이 그를 입증하고 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또 시련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무분별한 개발 후유증, 엉터리 같은 치수관리 등 인재의 측면이 더해졌겠지만 기본적으론 자연재해다. 크기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많이 겪어왔던 그 물난리다. 모든 것을 쓸어가고 엎어버렸다. 유례없이 길었던 올해 장마에 전라도 지역에서는 구례 등 섬진강 유역의 피해가 컸다. 언론보도로 많이 알려졌지만 물의 힘은 무서웠고 인간은 속수무책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수마가 쓸고 간 자리는 다시 인간의 삶의 의지와 땀방울로 활기가 돋고 있다. 수해 이후 복구가 한창인 구례 피해현장. 수재민들의 재기를 위한 몸부림은 울림이 컸다. 비록 수해 피해를 안입은 것이 없지만 식기 하나라도 건져 되살리려는 손짓과 바쁜 발걸음은 애처로웠고, 또 그래서 비장했다. 아직 제자리를 찾을 길이 막막하고, 내가 살던 방바닥에 등을 눕힐 날이 가늠되지 않는 처참함 속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만큼은 굳건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그 현장에서 수재민들에게 삶의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도 아름다웠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국에서 달려온 봉사자들은 폭염경보가 내린 한여름 더위를 무색케 할 정도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비지땀을 쏟았다. 젖은 옷과 이불을 빨아 널고, 망가진 전자제품을 수리하며, 흙 묻은 가재도구를 씻어 말리는 등 힘들고 어려운 일을 내 일처럼 해냈다.

하루 종일 한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가재도구를 물로 씻고 있는 여성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은 위대해 보였고, 총 대신 바가지를 든 젊은 군인들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이재민들의 의지와 자원봉사자들의 땀방울이 있어 삶의 현장은 다시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날을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모두가 마음을 모아줬으면 한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