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서히 봄의 기운 불러 들이고 있었다 문득 여행(도심 호수, 느리게 걷다-전평제에서)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21년 03월 04일(목) 1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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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호 제94호=글 고선주 기자)
봄이 옴을 알리는 절기인 입춘이 지났다. 이제 개울의 얼음이 녹고, 동백꽃, 버들강아지, 산수유, 매화, 목련, 매화가 피겠지 하던 찰나, 눈이 내린다. 이미 봄 맞을 준비를 다했는데 눈이라니. 조금 당황스럽다. 그런데 그 당황, 전혀 당황스럽지 않아. 어쩔… 잠시 젊은 청춘들의 표현을 빌려 써본다. 쑥스럽지만. 어쩌면 생경하다는 표현을 가장 많이 쓰이는 달이 2월인 듯하다. 보통 설 지나면 봄으로 생각하는데 올해는 그 생각 우습게 만들어 버린다. 도심 호수를 찾아가는 길, 눈이 내린다. 눈발이 제법 사납다. 마치 사나운 개가 컹컹 짖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다행히 도로는 미끄럽지 않았다. 예전에는 무진장 도심 외곽이었지만 도시가 확장되면서 이곳도 건물들이 빽빽하다.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인다는 정설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학교도, 상가도, 커피숍도, 빌라도, 모던한 전원주택도 들어서 있다. 아무래도 운치가 있어 사람들이 끌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광주시 서구 매월동 소재 전평제가 그곳이다. 455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시초는 15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월과 벽진 지역 주민들의 물 걱정을 덜어줘 농사를 편하게 지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선 중기의 문인 회재 박광옥 선생(懷齋 朴光玉·1526~1593)이 개산방죽을 쌓으면서로 알려지고 있다.
1999년부터 국토공원화 시범사업으로 쉼터를 조성하면서 오늘의 모습을 조금씩 갖추기 시작했다. 저수지 가운데 인공섬을 사이에 두고 목교가 설치됐으며 수변경관이 수려하고 자연탐방이 가능해 가족단위 여가선용의 장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리 크지는 않으나 산책하는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전평제는 인근에 매월농원 등 유명 식당들과 호수 풍경을 관망할 수 있는 카페들이 즐비하다. 한 특정 식당은 전평제보다 더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식당 명소로 자리하고 있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고,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는 등 한껏 더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곳이다. 필자가 방문한 지난 2월18일 오전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눈이 내린데다 한파가 몰아쳐 기온마저 떨어져 손가락이 곱을 지경이었다.
거기다 눈까지 쌓여 넘어질까 조심 조심 이동해야 했다. 눈 쌓인 호수 풍경에 한눈 팔다 보면 딱 넘어지기 십상이었다. 여태 호수를 한눈에 조망한 기억은 없었다. 이번에는 호수 전체를 조망하고 싶었다. 한때 호수만 있어 백마산이나 개금산에 올라가 조망해야 했지만 요즘에는 주변에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호수 전체 풍경을 조망하는 것이 쉬워졌다. 호수 안쪽 끝자락에 자리한 한 건물 옥상에 올랐다. 호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옥상에 눈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봄눈 치고는 폭설이었다. 한 겨울에 이만큼 내려도 폭설에 들 정도였다. 더욱이 바람까지 거셌다. 카메라 가방이 날아갈 만큼이었다. 카메라 앵글을 당겼다 밀었다 몸서리 몇 차례 하고서야 흡족한 풍경 사진 몇 장을 건질 수 있었다. 전경 사진을 잡은 뒤 호수 산책길로 접어들었다. 평지길이다보니 걷는 게 수월했다. 다만 눈이 쌓여 있어 미끄러운 게 여간 신경이 쓰였다.
눈 내린 호수의 풍경은 벚꽃 흐드러질 때 하나도 안부러울 정도로 아름다움을 뽐낸다. 벚꽃 터널은 만나지 못했지만 눈옷을 입은 채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들의 터널은 또 다른 운치를 더해줬다. ‘부귀’의 꽃말을 가지고 있는 배롱나무 가지 위에도 아슬아슬하게 눈옷이 걸쳐져 있다.
호수 한 가운데는 인공섬이 조성돼 있고, 목교가 놓여져 있어 호수를 가로지를 수 있으며 호수를 한 바퀴 둘러친 산책로는 지친 도시민들에 여유를 찾게 해준다. 잠시나마 힐링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안성맞춤이다. 지루할 정도의 산책로가 아니어서 가뿐하게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원과 운동 보조기구, 지압판이 깔린 산책로, 물과 달이 있는 집이라는 의미의 정자 수월당, 현시대 저마다 문향을 뽐내고 있는 현존 시인들의 이십여 시화들이 한껏 인문학적 식견까지 키워주는 듯하다. 호수 안쪽길은 개산길이 펼쳐진다. 개산길은 호수로, 마을로, 대로로 뻗어나간다. 여름에는 가시연꽃이 무성해져 있는 기억이 저장돼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 풍경이 제각각이다. 계절 마다 각기 다른 얼굴로 도시민들을 맞는다.
다시 눈에 덮인 시화들을 바라본다. 어떤 시화들은 내용을 눈으로 가렸다. 마치 비밀이라는 듯. 날은 추웠지만 시심마저 얼릴 수는 없었다.
‘내 말이 네게로 흐르지 못한 지 오래 되었다/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공중에서 얼어붙는다/허공에 닿자 굳어버리는 거미줄처럼//침묵의 소문만이 무성할 뿐/말의 얼음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이따금 봄이 찾아와/새로 햇빛을 받은 말들이/따뜻한 물 속에 녹기 시작한 말들이/들려오기 시작한다, 아지랑이처럼/물 오른 말이 다른 말을 부르고 있다//부디,/이 소란스러움을 용서하시라’
조선대 교수로 재직하다 서울 소재 대학으로 옮겨간 나희덕 시인의 시 ‘이따금 봄이 찾아와’ 전문이다. 지난 2월의 상황을 잘 담고 있다 하겠다. 다른 말이 필요없다. 이토록 한편의 시로 한 계절을 아우를 수 있다는 것을.
이곳은 광주 외곽을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연결된, 장장 81,5㎞의 빛고을산들길이 지나는 구간에 자리하고 있다. 마치 백마산과 개금산도 쉬었다 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황량하게 저수지만 있었던 한때, 거의 잊혀진 곳이었으나 지금은 또 다른 도심 명소로 진화하고 있다.
공원면적은 46,992㎡ 규모이며 일주산책로는 767m다.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아담한 규모를 자랑한다. 작다고 무시할 게 아니다. 있을 것 다 있는, 갖춰야 할 것 다 갖춘 곳이다. 도시민들이 잠시 들러 산책도, 운동도, 맛있는 식사도, 커피도 즐기며 잠시 쉬어가기에 적격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여파로 어디 나다니기 어렵다. 이럴 때 이런 곳을 강추해 본다.
분명하게 말하건대 눈이 쌓인 호수는 겨울의 시간을 붙잡고 있는 듯했으나 서서히 봄의 기운을 불러 들이고 있었다.

2026.10.24 (토) 0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