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중기 제도·생활상 기록한 역사서 [문화재 다시보기]담양 대덕 모현관과 미암일기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21년 04월 29일(목) 1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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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대덕의 모현관(근대 등록문화재)은 보물 제260호로 지정된 ‘유희춘 미암일기 및 미암집 목판’을 비롯해 미암 선생 관련 고적을 보관하던 수장시설이다. 한국전쟁 이후, 혼란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유물보호를 위해 1957년 후손들이 주도해 건립한 건축물이다. 당시 유물 보존·관리상 가장 취약했던 화재와 도난을 우려해 연지 한 복판에 부지를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담양 창평에서 모현관으로 향하다 보면, 도로의 이정표에 ‘모현관’이 아니라 ‘미암일기’로 표기돼 있다. ‘미암일기’가 마치 지명처럼 도로 표지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암일기의 유명세를 입증하는 실례이다.
기자가 방문한 날 모현관 입구에 개나리와 벚꽃, 진달래 등 봄꽃이 만발했다. 서양식 건축양식에다 석재로 지어진 모현관이 연못에 비친다.
과거 미암일기는 모현관에 보관했으나 건물이 낡아져 지금은 인근에 새로 박물관을 지어 보관하고 있다.
미암일기는 미암 유희춘(1513∼1577)이 그의 나이 55세 되던 1567년 유배에서 돌아와 처가댁인 담양에 머물며 쓰기 시작해 세상을 떠나던 해인 1577년까지 약 11년에 걸쳐 쓴 일기다. 원래는 14책이었으나 현재 11책만이 전하고 있다.
이 중 10책은 그의 일기이고, 나머지 1책은 자신과 부인 송씨의 시문을 모은 부록이다. 미암일기는 유희춘이 유배에서 돌아와 다시 관직생활을 할 때의 기록이므로 경연관으로서의 강론 내용을 비롯, 관직 수행과 관련된 조정의 동태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일기는 이이의 ‘경연일기’와 함께 선조실록의 사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암일기를 읽는 즐거움은 딱딱한 조정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 아내 송씨와 주고받은 편지 구절에 스며있는 애틋함, 부부의 건강을 염려하여 질병의 기미가 보일 때마다 그 증세를 일일이 기록해 놓는 섬세함, 가족들이 꾼 꿈을 매일같이 기록하고 길몽인지 흉몽인지 점쳐 보는 소심함, 첩과의 사이에 태어난 딸들을 좋은 데에 혼인시키려고 노력하는 부성애 등을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다.
심지어는 주변 인물들이 무언가 부탁하기 위해 가져오는 생선과 젓갈의 종류를 나열하는가 하면, 집에서 부리는 게으른 노비를 체벌한 내용까지 기록해 놓았다. 관직생활과 학문에 대한 기록이자 아내와의 애정일기 및 집안의 경제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가계부이며, 꿈의 내용과 나름대로의 해석을 담은 꿈 해설서이기도 하다.
특히 동서분당 전의 정계의 동향과 사림의 동태, 감사의 직무 수행, 경재소와 유향소의 조직과 운영, 중앙 관료와 지방관과의 관계에 관한 중요한 자료도 많이 실려 있다.
이 일기는 조선시대의 개인 일기로는 가장 방대한 것으로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한마디로 조선 중기 제도와 생활상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2026.10.10 (토) 2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