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공동체 만들어 ‘현대판 두레’ 실천

[커버스토리] 오성중 현대차서비스센터 송정점 사장
서비스센터 창업 이듬해 봉사 시작 22년째 나눔
자발적 후원회 결성 주도…소외이웃 돕기 앞장
자동차정비기능장 취득…"일·봉사 병행할 것"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8월 09일(월) 15:57
(2021년 8월호 제99호=글·정채경 기자, 사진·최기남 기자)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어려울 때 서로 힘을 보탰다. 봄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논과 밭을 정리하고, 여름이면 모종을 내고 농작물을 키웠다. 가을에는 수확의 기쁨을 누렸고, 겨우내 먹을거리를 저장했다 함께 나눴다. 농경사회는 사람이 중요한 자원이었기에 이같은 과정을 거쳐 관계와 나눔이 문화로 뿌리내릴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산업화를 거쳐 사회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조상들이 펼친 나눔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대판 두레를 선보이는 이가 있다. 오성중 현대차서비스센터 블루핸즈 송정점 사장은 광주 광산구 송정1동에 기부 문화를 정착시킨 장본인이다. 동네 사람들을 삼삼오오 모아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22년째 혼자 사는 어르신들, 몸이 아프거나 생계가 어려운 이웃 등을 따뜻하게 보듬고 있다.
그가 자동차 정비에 뛰어든 것은 1979년 중학교를 졸업하던 때였다.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살 수 있다는 부모님의 얘기를 듣고 정비공장에 다니게 됐다. 당시에는 국내 자동차 부품이 완성된 게 없을 때여서 자동차 문을 고치더라도 직접 용접하고 깎아서 부품을 만들고 배선을 하나하나 더해 뭉치를 만드는 등 그곳에서 각종 정비기술을 익혔다.
3년을 일하면서 중급 기술자가 됐고 시야를 넓히기 위해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주경야독하며 학력고사를 치렀다. 제주대학교 해양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통지서를 받았으나, 살아온 세계와는 너무 달랐다.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고 서점에 들러 관련 책을 찾아보며 전국에 있는 대학과 학과를 알아봤다고 한다. 지난 5년 간의 경험을 살려 자동차에 대해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영남공업전문대학 자동차과에 입학해 1985년 자동차 정비기능사를, 1986년 자동차정비 검사 자격증을 연이어 취득했다. 이후 경북산업대학으로 편입했고 1989년 졸업 후 쌍용자동차를 거쳐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10년간 몸담은 현대자동차에서는 자동차정비를 비롯해 기술자를 교육시키는 하이테크팀 팀장으로 자동차 정비에 관한 모든 것을 섭렵했다.
이웃을 돕기 시작한 것은 현대차서비스센터를 시작하던 1999년부터다. 현대자동차에서 10년 간 직장생활을 하며 월급을 꼬박 모으고, 살림은 수당으로 꾸렸다고 한다. 쉬는 날에는 자동차정비소에 나가 새로운 정비기술을 알려주고 부족한 용돈을 충당했다. 학창시절 일과 공부를 병행한 것이 몸에 베어있어 가능했던 일일 터다.
그렇게 그는 현재 서비스센터 자리인 광산구 송도로 299번지에 298㎡ 규모의 땅을 매입해 둥지를 틀었다.
그는 건물(90여 평)을 올리면서 나는 분진과 소음으로 이웃들에 피해가 되는 게 미안해 일일이 얼굴을 비추며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고 한다. 애경사를 챙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르신이 열쇠를 잃어버려 집에 못 들어가고 있는 날에는 담을 넘어 문을 열어주기도 했다.
"주변 주택들 연령층이 높고 오래된 주택들이 즐비하다 보니, 손볼 때가 많아 두꺼비집을 갈아주는 것은 물론, 골목길 통로를 정비하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송정1동 오 반장’이 된 셈이다.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말이 있듯 이웃들과 가깝게 지내다 보니 오 사장에 센터 주변 땅을 팔려는 어르신들이 늘었다. 사업이 날로 번창했다. 리프트 3개로 시작한 이곳은 현재 리프트 6개, 1322㎡(400여 평)크기로 창업 당시 보다 4배 가량 커졌다. 현대자동차 A/S와 일반 수리 등 하루 평균 60여 대를 수리하고 있다.
그는 일가를 이루며 이웃들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되면서 봉사활동으로 본격 눈을 돌리게 된다. 2001년부터 봉사를 시작한 그는 22년째 크고 작은 봉사를 행하고 있다. 근검 절약이 몸에 벤 아내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10년 간은 앞에 나서지 않고 이웃들을 묵묵히 돌봤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전신인 광산구에 투게더 광산나눔문화공동체가 생긴 뒤에 처음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아 10년간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힘썼다.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송정1동 만들기(따송)’를 2013년 결성, 현재까지 이끌고 있으며, 지난해부터는 송정1동 주민자치위원장도 맡고 있다. 광주시에서 실시하는 자치·복지사업에 참여해 다년간 각종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고 있다.



2015년에는 마을협동조합 ‘아름다운 송정씨’를 만들어 송정5일시장 내에서 송정시장 카페를 운영했다. 2018년까지 주민공동체 활동 공간으로 사용하는 한편, 인문학교실, 공예교실 등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해 시장을 찾는 고객들에 편의를 제공하는 등 전통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5일장을 찾는 사람들에 커피 한 잔을 1000원에 판매하고 이렇게 벌어들인 카페 수익은 전액 일자리 창출과 소외계층 지원, 프로그램 운영 등에 사용했다.
그가 위원장이 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봉사 창구의 ‘일원화’였다. 기부 물품을 전달받을 경우 송정동이나 특정 단체 등을 통해 받을 때 여러 사람이 나눠 가질 수 있도록 분배를 적절히 하기 위해서다. 까딱 잘못하면 여기저기서 보내준 소중한 기부물품이 한 집에 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관리 창구를 일원화해야 특정 가구 또는 사람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야 누군가가 보내준 마음이 헛되지 않고 여러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의 봉사는 남다르다. 기부물품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어서다. 늘 ‘마음에 남을 수 있는’ 활동을 펼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한다. ‘조금 더 가치 있게’ 활동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겨울철에 김장을 하면 밭으로 사람들을 다 데려가 직접 배추를 뽑고, 미리 빌린 트럭에 싣고 가 다듬어 간을 한다. 봉사를 하러 모인 이들 외에 동네 어르신들도 함께 참여해 김치를 담고, 담은 김치는 직접 마을 사람들에 전달해 나눠 먹는다.
이렇게 서로 일손을 보태면 200~300포기를 준비할 수 있는 비용으로 두 배에 달하는 김치가 마련된다. 김치를 담아 집집마다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구슬땀을 흘려 봉사의 의미를 더할 뿐더러 보다 많은 사람들이 김치를 전달받을 수 있다.
그는 기억에 남는 행사로 어르신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아이들에게는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진행했던 연날리기 프로그램을 꼽았다.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재료를 사서 어르신들에 손자, 손녀들이 날릴 연을 만들어달라고 하고, 다 만들어진 연을 어르신들과 어린이들이 함께 날렸다. 행사장 한 켠에는 연을 날리면서 먹을 군고구마 등 각종 먹거리를 준비했다. 덕분에 이웃간 친목이 자연스럽게 쌓였다. 그는 이때 어르신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남다른 기억을 선사한 것 같아 하길 잘했다고 느꼈다고 한다. 봉사란 여러 사람의 마음이 모이는 것이라는 점을 함께 부대끼며 느끼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봉사 아이디어는 같은 뜻을 품은 사람들이 맞댄 머리에서 나온다. 몇 년 간의 봉사활동으로 어느 정도 잔뼈가 굵어 늘 아이디어가 넘친다.
2018년 지역사회보장협의체로 바뀐 뒤에는 10년 간의 위원장직을 내려놓고 따송의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데 주력한다. 송정1동 내 기업과 점포 등을 대상으로 십시일반 후원금을 걷었는데 매번 봉사를 펼칠 때마다 후원금을 걷는 게 힘이 들어 자발적 후원회를 만들게 됐다.
송정1동 사람들을 모아 술잔을 기울이며 동네 어려운 이들을 돕자는 취지를 밝히니 다들 흔쾌히 찬성했다. 누군가 먼저 후원금으로 100만원을 쾌척하니 다른 사람들도 적게는 30만원, 많게는 100만원을 내놨다. 성실히 일해서 힘들게 번 돈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모인 것이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후원금은 총 650여 만원이었다. 이는 지난해 송정1동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유용하게 쓰였다. 각종 봉사활동은 물론, 위기가정이 생길 시 후원금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 자발적 후원은 올해로 8년째 유지되고 있다. 현재는 금액이 좀 더 커져 1350만원이 넘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서다.
이처럼 사람들과 함께하는 후원 외에 개인적으로 그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후원금도 적지 않다. 봉사를 이처럼 길게, 즐겁게 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는 ‘완급 조절’을 꼽았다. 지닌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면 오래 활동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봉사활동에 매진해온 오 사장은 최근 자동차정비기능장 자격증을 거머쥐었다. 1년의 공부 끝에 필기와 실기를 거쳐 지난 5월 자동차 기능장 자격증을 딴 것이다. 1986년 마지막 자격증을 취득한 지 36년 만이다. 자동차정비기능사는 최상급 숙련기술을 바탕으로 인력 지도와 감독, 경영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현장관리, 훈련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기능장 취득이 의미 있는 이유는 "기능장으로 고객들에 좀 더 신뢰를 주는 정비사가 되는 한편, 앞으로 10년은 더 일을 하겠다"는 그의 목표 때문이다. 일을 더해 벌어들인 수익을 봉사와 기부에 보태고 싶어서다.
오성중 사장은 "자동차정비사라는 직업을 통해 번 돈으로 후원을 하고 이 후원금이 누군가를 위해 쓰이게 된다"며 "기부와 나눔에 기여하면 덩달아 내 가치가 올라가고 존중을 받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봉사는 후원금을 얼마나 썼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감동을 전달하는지가 중요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봉사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함께 했으면 한다"면서 "30년은 해야 명함을 내밀 수 있듯 앞으로도 쭉 일과 봉사를 병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정채경 기자, 사진·최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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