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상태에서 작업 풀어가며 변화 추구할 터

[아트인] 민중화가 정희승
1980∼90년대 민중미술운동…군부독재 항거 투영
12년 만에 제5회 개인전 열며 그동안의 작업 성찰
"전업화가여서 그림 계속 그리는 게 꿈이죠" 밝혀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12월 13일(월) 18:17
(2021년 12월호 제103호=고선주 기자)광주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오월 판화를 위시로 한 민중미술의 역사가 오롯이 새겨져 있다. 과거 군부독재정권에 저항하던 전국에는 민중미술가들이 시대의 폐부를 놓치지 않고 붓질을 했지만 광주는 그들보다 훨씬 더 민중의 삶 속으로 향했다. 군부독재의 총칼에 쓰러져간 광주와 남도인들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항거하며 지켜냈기 때문이다. 민중화가 홍성담을 위시로 국보보안법 1호 구속 예술인이었던 이상호와 전정호 등 민중미술이 엄연히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아서다. 여전히 미술판에서 민중화가라고 명기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곳이 광주가 아닐까 싶다. 어떤 이는 ‘언제적 인물이냐’며 흘러간 세대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민중미술가들의 화업은 코로나19 정국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민중화가들의 삶은 멈춘 적 없고 물질만능의 시대, 민주화된 세상에서 여전히 자신들만의 영역을 지켜가며 시대의 부조리와 싸워나가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여기 그런 화가가 한명 있다. 서양화가 정희승씨의 이야기다. 때마침 2009년 4회 개인전 이후 10년 넘게 침묵했던 그를 12년만에 다섯번째 개인전(11.3∼29일 오월미술관)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에서 만나 예술인생 전반에 대해 들어봤다.
1991년 공동작인 ‘5월 전사도’와 1995년 작업된 ‘5·18가해자 35인 얼굴’에 가담해 광주민중미술의 한 획을 그은 장본인 중 한명이지만, 그는 1980년대 엄혹한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아래에서 민중미술운동에 동참했다.
지금의 그를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한낱 과거일 뿐으로 수용할 지 모르지만 나라든, 개인이든 역사라는 게 어느날 갑자기 이뤄지는 법은 없다. 그 역시 오늘날 그가 있기까지 치열하게 시대에 항거했던 1980년대와 1990년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다.
그의 민중미술과의 연은 대학에 진학하면서다. 1983년 호남대 미술학과에 진학하면서 민중미술에 눈을 뜨게 된다. 이름만 대도 알만한 김경주 교수(동신대)와 함께 줄곧 3년 동안 학교생활을 함께 했다. 3학년을 마치고 1986년 군에 입대해 1989년 2월 전역한다. 군 입대 시기를 뺀 1984년과 1985년에 선배들과 미술로 사회운동을 펼친 시기다. 이때 사회 운동 선배들로는 홍성담 김경주 이준석범현이 양회림 등이었다. 걸개그림에 많이 천착하던 시기였다는 술회다. 1985년 23세 때 민족미술협의회 태동 계기가 됐던 ‘한국미술 20대의 힘’(서울 아랍미술관)에 참여해 활동을 펼쳤다. 앞서 언급했던 김경주 이준석 그리고 한때 유동 YWCA를 거점으로 할 무렵 전정호 고 장경철 등도 동시대 민중미술인들이었다. 또 1985년 목판화 3인전을 꼬두메(윤만식 운영)에서 열었는데 참여해 존재감을 알렸다.

그렇게 잠시 끊어졌던 민중미술운동은 1989년 4학년 복학 후 다시 시작됐다. 무사히 대학을 졸업한 1990년, 그는 광미공에 들어가서 대내외에 활동을 알렸다. 그러면서 김경주 이준석 장경철 등이 먼저 터를 잡고 있었던 적산가옥인 불로동 작업실에 합류했다. 불로동 작업실 방이 여러 개였던데다 4층에는 곽재구 시인이 작업실로 활용했다.
그는 1994년까지 이곳 3층에 머물며 작업을 펼쳤다. 그는 말한다. 이 시기가 미술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고.
이 불로동 작업실에서 나중 이름을 얻게 된 ‘5월 전사도’의 걸개 초안이 나왔다. 1991년 4월 그해 5월 행사를 앞두고 한달동안 구상했단 5월 전사 초안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5월 전사도’에는 광미공창작단으로 서명돼 있어요. 걸개 그림과 연작 판화는 개별 작업이 아니라 공동 작업이니까요. 광미공창작단 도중이었지만 1993년부터 1995년까지는 공동창작단과 작업을 병행해 펼쳤습니다. 1995년 마지막으로 공동작업을 한 뒤 그 이후 개인작업을 해왔다고 보면 됩니다. ‘5·18가해자 얼굴 35인전’은 금남로에서 1995년 전시됐죠."
1992년에는 광주민중항쟁 연작 판화 20점을 맡아 작업을 했다. 1990년 전반까지는 연작 판화 공동 작업을 벌인 시기로 정리된다. ‘5·18가해자 얼굴 35인전’은 5·18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시를 열었는데 결국 특별법이 제정됐다고 귀띔했다.
그는 1996년부터 현재까지 개인작업에 몰두해 오고 있다. 이처럼 화가 인생의 초반부 민중미술운동을 펼친 그는 유년 시절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말을 듣고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미술공부에 뛰어들었다.
여섯번째 개인전과 관련한 입장 역시 빠뜨리지 않았다.
내년이 환갑이어서 중간 정리를 하는 취지로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자신의 작업을 돌아보는 기회였다고 한다. 출품작들은 정확한 메시지를 던져줘야 해서 대개 사실적이고 명확한 대상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다음에는 이것을 풀어서 직설 대신, 깊이있게 조망하면서 그려보고 싶다고 밝힌다.
"작업은 지금의 기조와는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발언이나 기록이 은유인 만큼 울림을 줄 수 있는 그림을 해보고 싶죠. 작가에게는 반복이나 복제는 위험하니까 끊임없이 갱신해 나가야 할 듯 싶다는 믿음입니다."
아울러 변화를 추구하는 등 작가로서의 꿈을 물었다.
"지금 말한다는 게 좀 그렇죠. 말한 대로,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전업화가이기 때문에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게 꿈이죠. 그림 그리는 것이 제 업 아니겠어요. 좀더 자유로운 상태에서 작업을 풀어가고 싶은 것이 꿈이라면 꿈이죠. 현재까지 해왔던 전시 주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해보고 싶습니다. 변화를 추구해 갈 거예요."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특별할 것 없는, 화가로서 지극히 일상적 답변을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가장 최근 작업으로 ‘아침꽃을 줍다’인데, 이 이후에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정하지는 않았죠. 이 전시를 계기로 작업에 변화가 일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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