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형적인 고려시대 민간 불교양식 보여줘 [문화재 다시보기] 곡성 당동리 석조여래좌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21년 12월 27일(월) 15: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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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이곳은 치소(治所)가 있었던 곳이다. 관청이 있고 지방 수령이 상주하는 곳을 치소라고 하는데, 삼국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곡성의 치소는 지금의 곡성읍이 아니라 바로 이곳 죽곡면 당동리였다. 고려 공민왕 때 왜구의 침입으로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여서 치소가 파괴되자 지금 곡성읍으로 옮겨온 것.
곡성은 백제시대 때부터 두 개의 현이 존재하고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다.
곡성에는 섬진강과 보성강(대황강)이 흐르고 농사짓기 좋은 기름진 땅이 많으며, 여기저기 산지가 있어 홍수와 가뭄을 막아주고 땔감 조달도 용이해 사람이 많이 살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니 삼국시대를 시작으로 곡성에는 많은 사찰이 세워지게 된다. 도림사. 태안사. 관음사. 성륜사 등 유명 사찰들을 비롯해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골짜기마다 수없이 많은 절터가 나오고 있다.
당동리 석조여래좌상(전남도 유형문화재 제272호) 역시 지금은 사라진 화장사의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장사 터는 지난 1966년 단국대 문화재팀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뤄졌는데, 당시 마을 인근에서 많은 석조유물과 와편 자기편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곳엔 두 개의 석불이 남아 있는데, 둘 다 여러차례 도굴 등의 수난을 당하면서 원래의 자리에 위치해 있지 않을뿐더러 원형도 많이 훼손된 상태다. 특히 정면에서 볼 때 오른쪽 불상의 훼손이 심하다.
왼쪽의 석조여래좌상은 발견 당시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몸체 4개 면에 각각 불상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오른쪽 옆구리에 새겨진 불상은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모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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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석불의 몸체에 불상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는 경주 남산이나 화순 운주사 불상에서도 발견되기는 하지만 이렇게 독립적으로 4면에 불상이 새겨진 석불은 현재까지 국내에서는 이 석불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학계에는 당동리 석조여래좌상의 문화재 가치 수준을 보물급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보존 상태가 너무 형편 없어 문화재 승격이 어려웠다. 특히 석불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가 시멘트로 다시 붙이는 등 훼손이 심하다. 여기에 불신을 받쳐놓는 대좌는 복련(연꽃무늬를 거꾸로 향하게 조각)을 덮은 하대석, 사각형의 중대석, 앙련(연꽃을 위로 향하게 조각)을 새긴 상대석 등 3개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중대석이 사라지고 없다.
왼쪽 석불은 오른쪽 석불에 비해 훼손이 더욱 심하다.
법의 등은 잘 표현돼 있으나 떨어져 나가 사라진 불두를 동네 사람들이 적당한 크기의 일반 돌을 올려놓아 보기에도 흉측하다.
이곳 당동리 석조여래좌상은 연화문 형식, 유려한 법의 자락, 넓고 높은 무릎 등 전체적인 형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민간 불교양식이 성행했던 고려시대 전형적인 조각양식을 보여준다.
마을 입구에 문화재를 알리는 안내판이나 이정표가 설치돼 있지 않아 찾아가는데 애를 먹어야 했다.

2026.10.24 (토) 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