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호 제103호=정채경 기자)피리는 가늘고 길다. 가방에 쏙 넣어 다니다 아무데서나 쓱 꺼내 연주할 수 있다. 어디든 어렵지 않게 함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찌보면 작기도 한 이 악기가 뿜어내는 소리는 결코 작지 않다. 다른 악기 선율과 한데 어우러질 때에는 연주가 돋보일 수 있게 받쳐주고, 혼자서도 귀에 팍 꽂히는 한방을 갖고 있다.
피리연주자 오영미씨는 30년 간 피리 연주를 해왔다.
그가 피리를 꾸준히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은 피리 선율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소리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단전에서부터 숨을 끌어올려 입술과 볼 힘으로 부른다는 그는 그 소리가 그렇게 좋았다고 했다.
그는 광주예술고등학교의 전신인 남도예술(고등)학교 출신이다. 성악이 하고 싶었다는 그는 막상 전공을 정할 때 피리를 선택했다. 악기에 리드를 꽂고 첫 숨을 뱉어내던 때가 강렬하게 각인돼서다. 피리에 리드를 끼우고 손을 올린 뒤 입을 대고 ‘후’하고 불었을 뿐인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이때를 회상하며 ‘운명’이란 단어를 입에 올렸다.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성악을 하고 싶었던 그가, 이전까지 악기를 연주해 본 일이 없던 그가 피리를 선택하게 된 이유다.
그는 그때부터 쭉 연주에 매진해 전남대학교 국악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한국 전통음악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 전북대학교에서 한국음악학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대학교 4학년이던 1999년 그는 전주시립관현악단에 덜컥 합격한다.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입단해 3년 6개월을 다니다 2001년 좀 더 가까운 광주시립관현악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20년에 걸쳐 수석 상임 단원이 되기까지 크고 작은 무대에 오르면서 그는 2013년 제21회 임방울국악제 기악부 대상(국무총리상)을, 2년 뒤인 2015년 무안승달국악대제전 기악부 1등(장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서울을 오가며 부지런히 기량을 갈고 닦은 결과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대취타 전수자이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4호 삼현육각피리보존회 전수자도 됐다.
피리연주자로 긴 시간 연주를 해온 만큼, 그는 대풍류와 정악, 신곡, 창작곡 등 다양한 곡을 선보였다. 주요 무대로는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프랑스 초청공연과 한·중 수교 18주년 기념 초청공연, 중국 하얼빈·일본 요코하마 등 다수 해외 초청 공연 등이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10월 광주문화재단 전통문화관에서 이름을 건 오영미의 피리산조 무대를 선보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진양조와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장단으로 구성된 ‘서용석제 한세현류 피리산조’를 3년 만에 연주해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그는 사실 피리 외에도 다양한 악기를 연주한다. 한국 전통음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연주 및 활동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 것. 피리와 태평소는 리드 모양과 크기가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주법이 같고, 오래 숨을 불어넣는 힘이 있어야 해 광주시립관협악단에 입단하면서부터 태평소를 배워 연주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는 생황까지 섭렵했다.
"피리와 태평소, 생황은 각각 고유의 매력이 달라 연주하면서 다양함을 즐길 수 있어 좋죠. 피리는 꿋꿋하고, 태평소는 힘이 있구요. 피리의 경우 음계에 한계가 분명한데, 생황은 이에 비해 음계 폭이 넓은 점에 끌려 시작했죠. 타 음악장르와 크로스오버하기에 수월한 악기라고 생각해요."

피리는 서정적이면서도 경쾌하게 분위기를 이끌어 갈 수 있고, 태평소는 관현악의 시작을 알리며 곡을 주도, 음악을 흥겹게 하는 역할을 한다. 생황은 타 악기들과 어렵지 않게 조화로운 소리를 내며 음역에서 자유로워 다양한 기교를 선보이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가 가장 기분 좋을 때는 연주의 합이 잘 맞았을 때다.
"아, 따뜻한 음을 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가장 이상적인 화음을 선사할 때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좋은 연주자도 혼자만 튀는 게 아니라 다른 악기들과 자신의 연주가 조화를 이룰 때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노력한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스스로 검증하고, 검증하기를 반복한다. 자기 연주에만 빠져버리면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닫혀버린다는 생각에서다.
"피리로 성음을 내기 위해서는 끝이 없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해요. 연습, 또 연습을 거듭해야죠. 국악관현악은 아쟁과 대금, 가야금 등 현악기가 중심이 되는 곡이기 때문입니다."
오영미씨는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다. 최근 연주회에서 산조 전 바탕을 연주해보니 하면 할수록 힘에부쳐 더 늦기 전에 산조 음반작업에 매달린다는 계획이다. 또 내년 피리연주 30주년 기념 독주회도 마련, 제자들과 무대를 꾸며볼 요량이다. 이에 앞서 얼마 남지 않은 올해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송년음악회(16일)를 잘 마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전통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연주자의 길을 걷겠다는 다짐을 들려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사람들이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연주에 임하는 오영미로 기억해줬으면 하죠. 우리 고유의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제 연주로 인해 널리 퍼져 나갔으면 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선율을 전하는 연주자로 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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