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백년 세월 국악 ‘한 길’ 후진 양성 큰 울림

[남도예술인] 문명자 (사)남도가야금병창진흥회 이사장
광주시무형문화재제18호가야금병창보유자
제자들과 가야금병창극 선봬…계승·발전 기여
국악인 설 자리·활동 여건 향상 주력 계획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2년 01월 11일(화) 18:19
(2022년 1월 제104호=정채경 기자)그는 늘 우리 음악에 빠져있는 듯 했다. 앉아서 제자들과 함께한 지난 세월을 이야기 하다가도 종종 일어나 손과 발을 놀리며 구성진 소리를 들려줬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가야금병창 무대를 선보일지 고민한다는 문명자 (사)남도가야금병창진흥회 이사장의 이야기다. 판소리 눈대목의 등장인물들이 의상을 갖춰 입고 등장해 서로 대화하는 입체창 형식의 가야금병창을 최초로 선보인 이가 그다.
그는 16세에 국악에 입문했다. 작고한 임동선 전남무형문화재 제13호와 인연을 맺으면서부터다. 사실 가수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중학교 때 친구가 국악을 배우는 것을 보고 국악에 매료돼 발을 들이게 됐다고 한다.
그 뒤 조통달(판소리), 한애순(판소리), 고 안채봉(남도민요), 김성곤(고법) 등 명인·명창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또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 보유자인 안숙선 명창의 제자이다.
51년째 오직 국악 한 길, 그리고 반 백년이 넘는 세월 가야금병창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기라성 같은 스승들의 보살핌 덕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전남도립국악단에서 창악부 수석단원과 지도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동안 미국 28개주를 비롯해 캐나다와 일본 등 해외를 돌며 우리 소리를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여러 국악인들이 무대에서 자리를 잡았으면 한다는 생각에 정년을 2년 앞두고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1993년 제19회 전주대사습놀이 가야금병창 부문 장원과 2010년 제10회 고령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 우륵대상인 대통령상, 2012년 광주예총문화상 대상인 예술문화상 등 다수의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
2005년에는 광주시무형문화재제18호가야금병창보유자로 지정됐다.
가야금병창이라는 전통문화예술의 계승 및 발전을 위해 2000년에는 이름을 내건 문명자가야금병창단으로 관객들을 찾았다. 가야금병창의 진흥을 위해 2002년에는 사단법인 남도가야금병창진흥회를, 2009년에는 그의 호인 성전(星田)의 뜻을 풀어 예술단별밭가얏고로 개칭해 두 축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그가 기획한 무대는 일반적인 가야금병창 무대와는 달리 앉아서만 하지 않는다. 판소리와 민요, 단가 등을 가야금병창곡으로 편곡해 손짓, 발놀림까지 더한 가야금병창극으로 만들어 선보여서다.
이를 위해서는 소리에 가락만 얹는 게 아니라 나머지 선율 마디, 마디를 다 새롭게 짜야한다. 기존 호흡이 끊어지는 구간을 가야금 선율로 메꾸고, 몸짓도 더하는 것이다.
앉아서 노래를 부르며 가야금을 타던 무대에서 나아가 일어서서 대화하는 가야금병창극은 정적이던 가야금병창이라는 예술장르에 볼거리와 더불어 시대에 맞는 발전을 이룩한 셈이라 할 수 있다.
"매번 다른 무대를 선사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죠. 더 새로운 것, 더 좋은 것을 찾는 게 사람 심리니까요. 기존 가야금병창과 달라야 눈과 귀가 번쩍 뜨일테니 가야금병창을 가야금병창극으로 만든 거죠."
남도가야금병창진흥회는 올해까지 18회에 걸쳐 대한민국가야금병창대제전을 열고 연주자들이 경합을 통해 기량을 겨룰 수 있는 장을 마련해오고 있다. 오로지 가야금병창만을 위한 대회로, 가야금병창에 매진한 이들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다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이 대회 이전까지의 전통예술대회는 여러 장르의 전통예술을 분야별로 나눠 진행돼왔고, 가야금병창은 가야금산조와 하나로 묶어 경합을 펼쳤던 데 반해, 온전히 가야금병창만으로 대회를 연다는 데 의미가 깊다.

이와 함께 그는 어르신들이 전통음악을 듣고 눈물을 짓기도 하고, 흥에 겨워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 1983년부터 수시로 광주·전남지역 사회복지시설 등을 찾아 공연을 선보였다고 한다. 그러다 2009년부터는 매년 ‘사랑의 연탄 드리기’라는 정기공연을 기획하기에 이른다. 공연마다 제자 80여 명과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이는 한편, 어려운 가정에 연탄을 공급해 이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2년 전부터는 연탄에서 쌀로 바꿔 ‘사랑의 쌀 드리기’를 실천하고 있다.
그가 제자를 길러오면서 변함없이 가장 중요하다 여기는 것은 ‘인성’이다. 예술적 기량은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연륜이 쌓여 어느 정도 경지까지 오를 수 있지만, 인성이 바로 세워지지 않으면 진정한 예인이 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다.
"참다운 예인이 되려면 예인이 갖춰야 할 덕목이 필수적이죠. 그 중 가장 중요한 게 인성이구요. 예술을 행함에 있어 기본적인 교양과 학식은 물론, 기능적인 면도 갖춰야죠."
이렇듯 우리 전통음악을 아껴온 그는 요즘 고민이 깊다.
TV를 틀면 국악인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국악을 전공한 후배들이 설 무대가 적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문제로 국악을 포기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으로 교육부에서 국악을 정규과목으로 채택해 초·중·고·대학교에서 국악이 필수과목이 돼야 합니다. 삶 속에 국악이 스며들어야 향유할 줄도 아니까요."
국가 차원에서 전통예술인이 예술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자구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 나오는 알림음과 은행에서 대기할 때 나오는 소리 등 삶 곳곳에 우리 전통음악이 쉬이 흘러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가락의 좋은 점을 알고 이를 찾아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거기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끝으로 그는 국악인들의 설 자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과거보다 국악이 대중화된 건 사실이지만, 갈 길이 멀죠. 전통을 큰 축으로 두고, 시대에 맞는 우리 음악을 선보여 전통음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지금처럼 후학 육성에 온 힘을 다할 거예요. 국악인들이 전통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진정한 예인이 될 수 있도록 이들의 여건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모색할 겁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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