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할 수 있어 행복" 꿈꾸는 쉐프 음식 ‘입소문’ [커버스토리] 박민진 식당 해이리 대표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2022년 04월 05일(화) 1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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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은 역병도 이겨낸다’ 코로나19 위기에도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 식당을 일컬어 생긴 말이다. 코로나19 위기 속 개업 1년여 만에 솥밥 맛집으로 거듭난 식당 해이리의 대표 박민진 쉐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식당 해이리’의 박민진 쉐프는 수제 연어장 온라인 판매업체 ‘살롱드파파’의 대표이기도 하다.
프랑스어로 ‘아빠의 공간’이라는 뜻인 살롱드파파는 가족에게 해주는 정성가득한 음식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박 대표가 직접 지었다.
가장 인기가 많은 음식은 ‘수제 생 연어장’으로, 단골 고객들은 하나 같이 ‘비리지 않고 감칠맛이 살아있는 연어장’이라고 극찬한다. 평점이 4.7을 넘기기 어려운 연어 판매업체에서 4.9점, 리뷰 5000개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 명성을 알 수 있다.
네이버 스토어 연어장 업계 1위, 온라인 연매출 8억 달성, 인기 유튜버 ‘참피디’가 선정한 2020년 메뉴 1위까지. 이 모든 것은 사업을 시작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이뤄낸 것들이다.
온·오프라인에서 두 업체를 운영하며 아침저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 바쁜 하루가 소중하기만 하다는 박민진 대표. 그는 "다음 사업을 구상할 수 있는 요즘이 무척 감사하다"며 "제 요리를 믿고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다는 건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식당 해이리와 살롱드파파
여느 사업가들이 그렇듯 첫 사업을 시작하기까지 박 대표도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처음 요리를 시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미래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던 17세 학생은 하굣길 우연히 보게 된 요리학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버지를 졸라 요리학원에 등록한 첫 날부터 그는 요리에 흠뻑 매료됐다.
"그때는 학원에 간 첫날부터 요리가 너무 재밌더라고요. 태어나 처음으로 뭔가에 흥미를 느낀 거예요. 매일 밤 요리 책을 보고, 새벽 늦게까지 공부하면서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어요."
학원을 다니며 한식과 양식 요리 자격증을 취득한 박 대표는 18살 때부터 직접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본격적으로 요리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20살이 되자마자 더 다양한 경험을 얻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양식, 한식, 일식 다양한 가게에서 주방 보조부터 헤드 쉐프까지 수년간 경력을 쌓은 박 대표는 ‘이제는 내 가게를 직접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고향인 광주로 다시 내려왔다.
가게를 오픈하겠다는 그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가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요리사이기 전에 사업가가 되어야 가능한 일. 박 대표는 아버지의 권유에 토목건설회사에서 1년간 일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박 대표가 요리를 평생 해야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다른 일을 해보니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마음을 다잡고 2019년도부터 온라인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아버지께는 1년 안에 사업을 키우지 못하면 사업가로서 소질이 없다 생각하고 요리를 접겠다 말씀 드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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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모은 돈 3000만원을 갖고 부엌이 마련돼 있는 저렴한 가게에 들어가 무작정 장사를 시작했다. 자신만만했던 생각과 달리 시작은 쉽지 않았다. 주문이 한개도 들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자신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주방을 나와 직접 발로 뛰며 시장 조사에 나섰다.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 대박 식당과 다양한 장사꾼들이 모이는 전국의 프리마켓을 찾아다니며 홀로 방법을 연구해나갔다.
"소비자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어떤 가격대, 어떤 상품에 반응하는지 공부했죠. 저는 평생 요리만 했지 장사는 잘 몰랐던 거예요. 마케팅 공부를 함께 하면서 매출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더라고요. 제품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홍보해야 하는지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요리사의 관점에서 소비자의 관점으로 바꿔 생각하자 변화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나타났다. 하루에 주문 한개도 받기 힘들었던 가게에 주문이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꾸준히 노력하는 쉐프의 음식은 금세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졌다. 아빠 쉐프의 ‘짜지 않은 연어장’은 오픈 1년여 만인 2020년 인기 유튜버 참피디의 총 결산 방송에서 다양한 식품을 제치고 당당히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주문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리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봤더니 유튜버 참피디 추천으로 왔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구독자 100만명이 넘는 인기 유튜버가 제 연어장을 소개하면서 주문이 정말 기적처럼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때마침 CJ물류 사고가 많이 나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행운이었다고 박 대표는 회상했다. 당시 물류 사고로 인한 배송 지연이 자주 일어났다. 박 쉐프는 바쁜 와중에도 제품을 다시 보내기 위해 고객 한분마다 연락해 양해를 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유튜버 참피디는 연어장의 맛뿐 아니라 이 같은 고객 서비스에 감동했다며 방송에서 극찬을 했고, 그 결과 살롱드파파를 믿고 주문하는 고객들이 더 늘어나게 된 것이다.
"매출을 생각해 모든 주문을 다 받을까 고민하다 결국 품절을 겪었어요. 빠른 시간 안에 음식을 준비하다보면 분명 미흡한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서비스에 신경을 많이 쓴 만큼 고객들은 알아주시더라고요."
온라인 스토어 ‘살롱드파파’가 자리를 잡아가자 박 대표는 꿈꿔왔던 첫 오프라인 가게의 밑그림도 함께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국에 가게 오픈이라니 모든 이들이 말렸지만 박 대표는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시기가 안 맞다는 생각보다는 시기에 맞춰 가게를 운영하면 된다. 그는 자신만의 강점을 만들고 다른 업체와 차별성을 개발해 손님들이 찾아오게 만들리라 자신했다.
가게 구상에 가장 앞서 고민했던 것은 메뉴 선정. 박 대표의 전공은 양식이었지만 첫 가게의 메뉴로는 위험 부담이 컸다. 살롱드파파에서 파는 연어장, 새우장 등 다양한 식품과도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민하다 ‘솥밥’이 떠올랐다. 굴이 제철일 때는 굴 솥밥, 두릅이 맛있을 때는 두릅 솥밥. 계절에 따라 맛있는 제철 재료로 요리해 솥밥과 차려낸 근사한 한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2021년 1월 우여곡절 끝, 꿈에 그리던 첫 가게의 문을 열었지만 생전 처음 운영해보는 식당은 온라인 스토어와는 전혀 달랐다.
막상 가게를 오픈하고 나니 주방의 동선과 요리 순서가 꼬이는 등 예상보다 많은 난관에 봉착했다. 위험한 주방도구와 불을 사용해 정해진 15분 안에 요리를 완성해야 하다 보니 주방에서의 매일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컴플레인도 많았어요. 이걸 수정하지 않으면 개선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귀담아들었죠. 직원들에게도 컴플레인은 그때그때 보고해 달라 부탁했어요. 그러면서 손님들의 반응이 점차 좋아지는 걸 느꼈죠."
박 대표의 이러한 노력은 빛을 발했다. 5명에 불과하던 직원들은 15명으로 늘어났고 매출은 10배 이상 뛰었다.
코로나 시국에 첫 가게를 열면 금방 망할 거라던 주위의 예상을 뒤집고 식당 해이리는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믿고 찾는 가게로 거듭났다. 지인 소개로 온 손님부터 살롱드파파의 연어장을 사먹고 먼 타지역에서 직접 찾아온 손님까지. 점심시간이면 가게 앞은 쉐프의 계절 솥밥을 맛보기 위한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고소한 와규를 참숯에 구워 올린 와규솥밥, 막걸리와 된장에 절인 오겹살을 참숯에 구워낸 된장오겹솥밥, 노르웨이 슈페리어급 연어로 만든 연어장을 곁들인 간장생연어장솥밥이다. 식당 해이리를 찾는 손님 중 90%는 3~40대 여성으로, 공략하기 까다로운 손님의 입맛도 단번에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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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재료는 정성
매일 음식을 만들면서 박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손님과의 약속이다. 그는 자신의 음식을 믿고 선택해준 고객에게 늘 변치않는 최고의 맛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어 요리에는 꼭 오늘 받은 최상급 슈페리어급 연어만을 사용하고, 받은 재료는 12시간 숙성 후 무조건 그 다음날 전량 소진한다. 적자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재료에 관한 고집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다.
"흔히 ‘연어는 비리다’는 인식이 있는데 요리해보니 연어는 비린 음식이 아니에요. 비린 맛이 난다는 건 재료가 신선하지 못하거나, 오늘 안 팔린 걸 내일 또 팔았기 때문이죠. 남은 걸 제가 다 먹는 한이 있어도 신선하지 않은 음식은 판매하지 않습니다."
쌀이 가장 중요한 솥밥 요리에는 도정된 지 최대 이틀을 넘기지 않은 쌀로 정성스레 밥을 짓는다. 날고 기는 특별한 재료보다 맛있고 좋은 밥이 가장 훌륭한 재료다. 그는 "제 요리에 특별한 비법은 없다"며 "최상급의 재료로 매순간 정성을 담아 요리할 뿐"이라고 말했다,
프랜차이즈와는 다른 쉐프의 진짜 ‘요리’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음식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밀키트, 조미료로 맛을 낸 간편식이 넘쳐나게 됐다. 박 대표는 가까운 미래에 비대면 음식 산업의 시장 확대를 동의하면서도 정성스레 사람이 직접 만든 음식과는 비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가공 음식들을 계속 먹다보면 사람들은 다 느껴요. 그럴수록 공장에서 찍어낸 음식이 아니라 원초적인 음식을 찾게 돼 있죠. 외식업을 처음 시작할 때 보통 프랜차이즈로 먼저 경험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반대로 생각해요. 공장에서 만든 반조리 식품을 조리하는 대형식당보다는 작더라도 내공을 갖춘 식당이 더 강점이 있지 않겠어요?"
말도 안 되게 저렴하게 팔수는 없지만 이왕 돈 내고 먹는 거 후회하지 않을 음식으로 승부하자는 게 그의 요리 신념이다. ‘많이 팔자’가 아닌 ‘하나를 팔더라도 잘 팔자’는 마인드다.
그는 타지역 호텔이나 브런치 카페로부터 거래를 문의하는 연락이 올 때도 신선도 유지를 위한 냉장고 등 필요한 요소를 갖춘 곳인지를 먼저 확인한다. 본인의 음식 기준에 맞지 않는 곳과는 거래하지 않는다.
"우리 연어장은 다른 업체보다 더 비싼데도 판매 1위를 유지하고 있잖아요. 가격이 조금 더 비싸더라도 그 금액에 만족할 만한 음식을 만든다면 고객들은 다시 찾아주시는 거 같아요."
꿈꾸는 일터
박 대표는 현재 15명의 직원들과 함께하는 사장이기도 하다. 힘든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하는 직원들에게 누구보다 감사한 마음이 크다는 박 대표. 오랜 주방 경력으로 요리사를 꿈꾸는 청년들이 느끼는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그는 직원들과의 소통에도 많은 시간을 쏟기 위해 노력한다.
"요리사들이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게 제 목표예요. 지난 수년간 주방에서 제가 겪었던 일이기에 이 친구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알죠. 요식업 종사자가 가장 힘든 게 불안정한 미래거든요. 제 가게가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일터였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박 대표는 많은 요식업자들이 코로나19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모든 위기는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양면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제 온라인 사업은 코로나가 심한 시기에 오히려 매출이 급상승했어요. 주문이 한개도 나오지 않을 때 좌절하기 보다는 매일 연구하고 더 공부했죠. 앞으로도 비대면 음식 산업은 계속 확대될 거고, 그에 맞춰 꾸준히 고민한다면 누구에게든 분명 해답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