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자리 즐기면서 서두르지 않고 해나갈 생각"

[아트인] ‘제28회 광주미술상’ 수상 유지원 작가
어려운 환경 속 조소 입문…영상 퍼포먼스 등 복합장르 추구
“내용보다 껍데기 중심 작업했다” 자성 佛서 유학 담론 정립
우리와 다른 아트 접촉 시야 확장…골판지 재료 작업에 몰입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2년 11월 04일(금) 13:01
(2022년 7월 제110호=글 고선주 기자)그의 이름은 간간히 미술판에서 봐왔다. 그의 휴대폰 번호도 입력해놓은 것으로 보아 초면은 아닌 듯 싶었다. 나중에 기억을 더듬어보면 인터뷰를 한 차례 요청했는데 성사되지 않은 인연이 있다. 그러다 그의 반가운 이름을 발견한 것은 ‘제28회 광주미술상’에서였다. 수상작가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지난 6월2일 (사)광주미술상운영위원회가 실시한 ‘제28회 광주미술상’ 심사 결과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주인공은 전북 순창 출생으로 조선대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일본 동경에서 2년여 머물다 프랑스로 건너가 리옹 인근 안시 국립예술학교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하며 2011년부터 2018년까지 8년 간 체류했다.
그 후 2019년 광주로 돌아와 열성적으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입체조형 및 복합매체 설치작가인 유지원씨(39). 그를 만나기 위해 입주(2022.1.1∼12.31) 중인 광주시립미술관 국제레지던시를 최근 방문해 그로부터 작가로서의 삶과 작업, 그리고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줄곧 ‘가치의 재구성’이라는 타이틀로 사회 안에서 버려지거나 무시돼온 공간(장소)과 오브제 그리고 존재 또는 기억과 역사의 흔적들을 바탕으로 그것들을 이용하며 조각, 설치, 영상 작업들을 펼쳐오고 있는 유 작가에게 광주미술상 수상은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듯하다. 자신감이 조금 저하되던 작가로서의 삶에 충분한 자극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됐다.
"광주미술상은 45세 이하인 작가들에게 주는 상이죠. 2019년부터 광주에서 다시 활동을 했는데 자리잡기에는 매우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주미술상에 아예 응모를 안하며 지내왔어요. 준비가 안됐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거죠. 그러다 올해 ‘내봐도 되지 않을까’해서 공모했는데 사전 자료를 본 심사위원들이 제 작품에 대해 참신하게 바뀌었다 평가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누군가 지켜봐는 주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유 작가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순창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주변에 변변한 미술학원 하나 없어 순창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화실을 꾸리고 있던 홍익대 조소과에서 공부한 예술가를 알게 됐고, 그가 하는 흙 작업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때 유 작가 역시 손으로 하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고 회고했다. 이 경험이 그를 훗날 조소로 이끈 것이 아니었나 싶다. 광주예고로 진학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선생님의 소개 덕분이었다고 한다. 광주예고 졸업 후 자연스럽게 조선대 조소과로 연결된 것이다. 그는 조소에 대한 느낌을 가감없이 들려줬다.
"어릴 때부터 조소를 했는데 아카데믹한 게 강했습니다. 예술보다는 기술이 강했다는 이야기죠. 대학 졸업 때는 구상 조각 잘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허무했고, 겁이 나기 시작했죠. 이때 제가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꿈이 컸었고, 한국 대표작가로 뽑히는 등 좋은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이 강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밖으로 눈을 돌렸고, 결국 유학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선진국에서 교육을 받아본 뒤 재능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만두자는 생각으로 유학을 결행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먼저 일본으로 건너갔다. 물론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그는 대학 졸업 전후 중국 현지로 가 북경 등지의 미술을 접하게 된다. 중국은 구상 조각에서 우리보다 한발 앞섰기 때문에 그에게 곰곰히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 듯 보였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구상 조각에 관해 앞서나가는 듯한 인상을 받은 때도 이 무렵이었다. 그는 사회주의 국가야말로 공산당에 의해 상상력을 제한받고, 창작 자유가 많
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진행하는 구상조각이 발전한 것으로 풀이했다. 대학 졸업 무렵 자신을 둘러싸고 미술의 대내외 환경과 작업이 예민하게 인식됐던 것 같다. 이를 계기로 그는 머리를 비워둔 채 자신이 해온 작업이 작품 내용보다는 껍데기 중심으로 작업을 해왔다는 점을 깨치게 된다.

우리와 대학 편제가 비슷해 흥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일본 생활은 1년8개월 만에 끝났다.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가서 봤더니 우리나라처럼 대학이 서양화·한국화·조소과 등과 같이 쪼개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아트과처럼 하나의 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자연스럽게 아트과에 진학한다. 우리와 다른 아트를 접하게 됐고, 그에게 불모지나 다름없던 미디어아트도 접하게 된다. 장르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 그에게는 하나의 충격처럼 다가왔던 셈이다. 그래서 그는 이 무렵 아트를 할 수 있겠다는 것과 다장르에 도전해볼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은 것을 잊지 않고 언급했다.
"지금 작업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에서 접한 다양한 아트 방식과 제작 과정 때문에 아마 프랑스로 가서 공부를 한 것 같아요.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1990년대 당시 젊은 콘셉트의 화가, 조각가 등 아티스트의 총칭인 YBA(Young British Artists, 1980년대 말 개념미술을 주도한 영국 젋은 예술가 그룹)의 소속 작가로 특수효과를 다룬 예술가 등을 접하면서 구상 조각 외에는 자신감이 결여돼 있었는데 어느 정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죠."
결과론적으로 프랑스에서의 유학은 그에게 예술가로서 한 인생을 끌고 나갈 수 있는 담론과 철학, 소신을 안겨다 준 것으로 투과됐다. 거기다 그곳의 교육 편제는 그를 더 탄탄한 실력을 쌓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론 정립이 안되면 졸업이 안되는 편제여서다. 다만 국내와는 달리,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작업할 것 등 일체 제시가 없어 당황하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교수와 테크니션(Technician, 기술자·전문가)이 분리돼 있다는 설명이다. 교수는 철저하게 이론과 철학적인 부분을 감당할 뿐 제작에는 관여하지 않는 문화로 인한 혼선이 다소 있었지만 그는 이내 극복하고 자신만의 작업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답을 찾아내야 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 무렵 그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술회했다. 안시 일대 폐선 부지에서 벌인 작품 ‘예술가의 여정’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방향의 작업을 했고, 과정 자체가 아트가 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작업을 할 당시에는 골판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골판지 작업은 ‘역사의 무게’ 부터다.
그래서 요즘 유 작가는 골판지 작업을 전개하다보니 광주를 연고로 활동 중인 양나희 작가와 함께 골판지 작가로 불린다. 골판지를 택하기까지 어려움이 있다고 전한다. 몸에 익숙한 재료를 탈피하기 어려웠던 것이 그 이유다. 이런 작업 모두 그는 ‘예술가의 여정’이라는 연상작업이 있다는 것으로 대신했다. 과정을 중시하게 됐고, 버려진 곳에서 영상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국내로 돌아온 지 몇년 되지 않아서 거대한 포부보다는 예술을 해나갈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을 중시하는 듯 보인 그로부터 향후 작업 계획을 듣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앞으로 1년에 야외작업 1∼2건 정도 하려고 합니다. 올해는 실내 작업 위주로 작업을 할까 해요. 지금 하는 작업들은 제가 좋아서 하는 작업들이구요. 또한 가정에도 충실해야 할 입장이잖아요. 이처럼 제 역할이 다각도로 있으니까 예술가라는 자리를 즐기면서 서두르지 않고 작업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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