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함께 하는 동료 큰 힘 격려하며 무대 꾸릴 터 [예술기획] <64>청년 예술단체 ‘프로젝트 더 울림’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2022년 11월 04일(금) 14: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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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으로 소리를 내는 관악기는 피아노와 현악기에 비해 다소 생소하게 여겨져 온 게 사실이다. 소리를 내는 것부터 난관이기 때문에 배움에 도전하는 것도 쉽지 않다.
호락호락 소리를 내어주지 않는 만큼이나 깊고 오묘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다양한 음역대를 가진 클라리넷, 탄탄한 중저음의 트럼본, 맑고 청아한 오보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색의 호른까지. 공기의 울림이 만드는 특유의 음색은 마음 깊숙한 곳까지 어루만져주는 느낌이 들어 그 소리에 푹 빠진 마니아층이 두텁다. 프로젝트 더 울림은 이 악기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윈드 앙상블 팀이다.
지역에는 뛰어난 신인 클래식 연주자들이 많이 있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무대에 서기 위해 누군가의 캐스팅을 기다리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프로젝트 더 울림은 청년 연주자들이 주가 돼 공연을 이끌어보자는 포부를 갖고 창단했다. 2017년 전남대 음악학과 재학생이던 홍성혁씨가 같은 뜻을 가진 동문들과 함께 마음을 모았다. 클라리넷에 고운누리·신은총·정은영, 플룻 김민정·신혜지·조효주, 오보에 이혜리, 호른 김승경·조혜선, 트럼펫 김희수·진현조, 트럼본 김시정·서주연·홍성혁, 튜바 조재형, 색소폰 이정태·이호진, 타악기 권도헌·홍지수, 지휘자 이현민씨까지 20명이 활동 중이다.
"클래식하면 흔히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생각하는데 오보에, 호른, 트럼본 등 다양한 악기가 많습니다. 저희 공연은 이러한 관악기들의 합주로 이뤄져 더 특별한 느낌을 주죠."
본격적인 활동은 2017년 여름부터였다. 2017년 6월 담양중앙공원 ‘담빛길음악회’를 시작으로 ‘CGV 찾아가는 음악회’, 2018년 ‘추억의 충장축제’ 개막식 퍼레이드, 2019년 대인예술야시장 ‘무장무장’ 등 다양한 기획 공연과 초청 행사를 통해 시민들을 만나왔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해마다 정기연주회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여느 예술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2년여의 공백기를 겪어야만 했다.
팀의 특성상 단원 수가 많다보니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모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입으로 연주를 하는 관악기 연주자들에게 상황은 더욱 가혹했다. 설 수 있는 무대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마스크를 쓰면 연주를 할 수가 없잖아요. 단원이 많으니 다 같이 모일 수 없었죠. 설 무대가 없어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을 해왔어요. 하루만 쉬어도 연주 기량이 확연히 달라지니까요. 단원들 모두 ‘언젠가 회복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버텼습니다."
오래 기다렸던 만큼이나 더욱 활발히 무대에 나서고 싶다는 게 이들의 바람. 올해에만 2번의 정기연주회를 선보인다. 지난 2월에 올린 제3회 정기연주회에 이어, 오는 9월 북구 문화예술회관에서 제4회 정기연주회를 앞두고 있다. 윈드 앙상블로 작곡된 정통 클래식 곡들을 준비 중이다.
앞서 지난 7월2일에는 ‘빛고을시민문화관과 함께하는 공연나눔’의 첫 번째 순서를 맡아 성황리에 무대를 꾸몄다. ‘무슨 동물일까? 프로젝트 더 울림과 함께가요 클래식 동물원!’을 주제로, 교향악적 동화를 해설과 영상이 어우러진 음악으로 들려주는 등 온가족이 감상할 수 있는 맞춤형 공연을 선사했다. 실제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단위 관객들이 많아 호응도가 높았다.
"클래식을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무대를 생각하다가 이문석 작곡가께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로 편곡을 부탁했어요. 아이들에게 흥미롭게 클래식을 소개한다는 느낌으로 동물들의 소리, 화석 등의 주제를 악기로 표현했죠. 기술은 부족하지만 무대 뒤편에 쓰일 영상도 밤새 직접 만들었어요. 관객분들이 무대를 즐기는 걸 보고 덩달아 신나게 연주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회가 오길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 있게 팀을 만들었지만 초반에는 그만두고 싶은 적도 많았다고. 무대에 서기 위해 연주 연습만 할 것이 아니라 서류 준비, 프로그램 기획 등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간다는 것에 그야말로 ‘멘붕’이 왔다. 제1, 2회 정기연주회 때는 특히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다. 체력을 생각하고 레퍼토리를 짜야하는데 하고 싶은 곡들만으로 무턱대고 짰기 때문이란다.
"처음엔 힘들기만 했던 거 같아요. 시간, 의견 조율부터 연습 과정까지 단원들 수가 많다보니 배로 오래 걸렸죠. 마땅한 공간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무대 기획부터 모든 걸 맨몸으로 직접 경험하며 헤쳐 나갔죠. 하나하나 배워간다는 생각으로 버티다보니 이제는 힘들긴 해도 공연을 하고 나서 희열감을 느껴요."
연주를 하다보면 레퍼토리가 비슷해진다. 관객들이 기존에 접해보지 못한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게 홍 대표의 생각이다. 이미 유명한 곡들보다는 현대 들어 작곡된 난이도 있는 음악들에 도전해 차별화를 두고 싶다는 것이다. 제3회 정기연주회 때는 윈드 오케스트라 현대곡인 제임시드 샤리피(Jamshied Sharifi)의 ‘Awakening’을 연주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생소해서 잘 모르겠다’와 ‘생소함이 새로워 좋다’로 나뉘었다.
"단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는 부분이에요. 전에 해보지 않은 새로운 곡을 시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그래서 더 우리가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부가 되고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좋아해주시는 관객들도 분명 있어서 계속 시도하고 싶어요"
클래식하면 흔히 어렵고 무게 있는 장르라는 인식이 있지만 우리 생활 곳곳에 이만큼 스며들어있는 음악도 없다고 한다. 영화음악은 물론 티비 프로그램에도 클래식은 자주 등장한다.
"예전에 ‘장학퀴즈’라는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으로 트럼펫 곡이 쓰였어요. 요즘에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TV 광고에 똑같이 쓰이더군요. 클래식의 매력은 그런 거예요.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고 어디서든 우리 곁에 흐르고 있죠. 성악은 ‘팬텀싱어’, 국악은 퓨전국악으로 많이 대중화됐는데 클래식은 아직 기회가 안온 거 같아요. 어떻게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모든 클래식 음악인들의 숙제죠."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현실적인 문제에 고민을 피할 수는 없다. 꾸준히 음악을 놓지 않기 위해 대부분은 학원이나 방과 후 강사, 개인레슨 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간다. 이에 지쳐 음악을 그만 둔 동료들도 많다. 근래 들어 코로나19가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체감하는 건 크지 않다.
"아직 크게 나아진 느낌은 없어요. 여전히 회복 단계에 있죠. 모든 예술 종사자들의 마음이 같겠지만 무대에 설 수 있는 환경이 더 나아졌으면 해요. 대중들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지역 클래식 음악계가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이들은 젊은 패기로 늘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싶다고 밝혔다. 올해는 유학을 다녀온 창단 멤버 이현민씨가 9월 정기연주회부터 재합류한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음악에 정진하겠다는 포부다.
"저희는 공연 단체이기 이전에 다함께 성장하기 위해 모인 팀이에요. 코로나19 상황이지만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게 가장 큰 힘이었죠. 앞으로도 서로 격려하면서 무대를 꾸려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