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 특징 고루 갖춰

[문화재 다시보기] 보성 우천리 삼층석탑
단층기단·탑신부 구성 옥개석 표현수법 일치
시멘트 바닥에 일부 깨진 옥개석 등 아쉬움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2년 11월 04일(금) 17:11
(2022년 9월 제112호=여균수 기자)우천리 삼층석탑은 보성과 벌교 간 2번 국도에서 우천리 마을로 진입해 300m쯤 들어가면 마을 앞에 우뚝 세워져 있다.
과거 우천리에 절이 있었다는 마을 주민들의 구전에 따라 그 절에 소속된 탑으로 추정되고 있는 석탑이다.
우천리 절터는 농사와 2번 국도 개설 등으로 많은 석재들이 유실되면서 사찰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사찰에 대한 문헌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 절 이름조차 추정할 수 없다.
단지 마을 사람들의 구전에 따르면 이곳 절은 벌교읍 징광리에 있었던 징광사의 말사였다고 한다.
우천리 삼층석탑은 1970년과 1985년 두차례 보수를 거쳐 1988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에서 국가지정 보물 제943호로 승격됐다.
석탑을 이루는 명칭이 복잡하고 어려워 석탑을 이해하려는 일반인들을 힘들게 한다. 구성 명칭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석탑은 기초를 이루는 기단부, 그 위해 탑의 층수를 결정하는 탑신부, 그 위에 탑 아름다움의 결정체인 상륜부로 구성돼 있다.
기단부는 다시 하대와 상대로 나뉘어져 모서리기둥인 우주와 중간 기둥인 탱주, 우주와 탱주 사이에 들어가는 면석, 그리고 이들 기둥석을 받치고 위에 평평하게 깐 갑석 등으로 구성돼 있다.
탑신부는 기둥역할을 하는 탑신석과 그 위해 지붕역할을 하는 옥개석, 그리고 옥개석을 받쳐주는 옥개받침 등으로 구성돼 있다.
상륜부는 장식물 기초를 이루는 노반 위에 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조각의 복발 등을 비롯 다양한 이름의 장식조각들이 올려진다.
우천리 석탑을 받치는 기단부는 4매의 갑석을 엇물림했고, 상면에 2단의 괴임을 둬 기단면석을 받치고 있다. 면석은 각 면 중앙에 1주의 탱주를 뒀고, 모서리에 우주를 받치게 했다.
탑신부는 3층으로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1돌로 총 6매로 구성됐다. 탑신부는 모서리에 우주를 새겼을 뿐, 면석에 문비나 기타 부조상은 없다. 1층 탑신은 2층과 3층에 비해 더 높게 설정해 상승감을 강조하고 있다.
옥개석은 3층 모두 4단의 옥개받침을 뒀으며 모서리 전각의 반전은 경쾌한 편이다. 옥개석의 모서리에는 각각 1개씩의 풍경공이 남아 있다.
상륜부는 노반 위에 연꽃 문양이 들어간 복발로 구성, 다소 간소하게 꾸며져 있다.
우천리 석탑의 특징은 우선 기단이 단층으로 조성돼 있다는 점이다. 단층기단 석탑은 신라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 경주 남산에서 시작돼 경북 지역으로 크게 확산된 양식이다. 또 기단면석을 4매로 결구하는 수법과 지대석의 결구방식이 경주 남산과 경북 지역 석탑과 동일하다. 여기에 탑신부의 구성과 옥개석의 표현수법은 9세기 중기에 유행한 단층기단 석탑 양식에 부합해 제작 시기를 파악하는 데 단서가 되고 있다.
이밖에도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의 비례가 잘 맞는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 탑은 기단 일부분이 땅속에 묻혀있고 바닥은 시멘트로 발라져 밑부분의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없으며 탑신부 1층과 2층 옥개석 한쪽이 깨져 아쉬움을 주고 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
회사소개회사연혁회원약관개인정보보호정책제휴문의고충처리인광고문의기사제보
광남일보 등록번호 : 광주 가-00052 등록일 : 2011. 05. 02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광주 아-00193 등록일 : 2015. 02. 02 |회장 : 양진석|발행인 : 차재진|편집인 : 이승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무등로 254 (중흥동 695-5)제보 및 문의 : 062)370-7000(代) 팩스 : 062)370-7005 문의메일 : design@gwangnam.co.kr

본사이트에 게재된 모든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 의 사전 허가없이는 기사와 사진을 무단전재 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