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불모지 옛 탄광촌에 '예술 거점' 될까 [문화공간탐구]옛 탄광촌에 문 연 '갤러리 휴'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2023년 07월 02일(일) 1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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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국어 교사 출신인 박주오(사진작가)씨가 2016년에 전남 장성군 삼서면 수양저수지 앞에 자리한 청한갤러리를 운영한데 이어 화순군 동면 천덕리 동암마을에 새롭게 ‘갤러리 휴’를 지난 3월 개관, 옛 탄광촌의 문화활성화를 위한 첫 발을 뗐다.
동암마을은 광주 인근 보기 드물게 깊은 산촌으로, 등록 문화공간이 부재했으나 갤러리가 개관되면서 문화공간이 마련된 셈이다.
갤러리 휴는 동명교회 본당과 사립 유치원 부지 1100평(3636㎡)의 공간에 들어섰다. 현재 본당은 헐리고 사라졌지만 유치원은 보존되고 있다. 갤러리 휴는 이 유치원에 들어섰다. 유치원은 일자형 건축물로 직사각 형태를 띄고 있는 가운데 A반과 B반 등 두 공간으로 분리돼 있었으나 갤러리 공간을 구축하면서 그 벽을 터 개방감을 한층 더 강화했다. 길다랗게 동선을 확보해 전시 작품 감상을 하는 데 답답하지 않고 차분하게 직사각 형태의 실내 전시공간을 돌면서 작품을 감상하면 되는 구조다.
특히 원형보존에 중점을 두고 이뤄진 리모델링 덕에 이곳 유치원을 거쳐간 수많은 출향 인사들이 모처럼 고향에 내려와 반드시 둘러보는 공간인데, 둘러보고 나서 박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한다는 귀띔이다. 작가는 갤러리 공간으로 만들 때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베지 않고 되도록 그대로 존속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공간에 서린 스토리를 망가뜨리지 않았다는 것과 궤를 함께 한다.
교회 운동장은 잔디를 심어 초록이 숨쉬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한때 1200여 명이 재학했을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등교했던 인근 동면중학교가 학생수 급감 여파로 2024년 폐교를 앞두고 있어 유치원을 거쳐 중학교에 진학한 출향 인사들에게는 유일하게 추억을 전해줄 공간으로 갤러리 휴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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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휴는 △사진 원데이 클래스 무료 운영 △전시 기간 1개월 기준 원칙 수립 △주제가 있는 전시 구현 △‘민중 속으로’ 외치며 일어난 계몽 지향 브나로드 운동 가치 실현 등의 목표를 내세우고 있는 신생갤러리이지만 확실한 이정표를 세워 나갈 복안이다.
갤러리 휴에서는 5월1일 개막, 오는 30일까지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타이틀 아래 한지로 인화한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박주오 사진전이 진행 중이다. 애초 박주하 전시를 5월에 열기로 기획했으나 여건상 실현되지 못하고 대신 박 작가 작품전으로 꾸며진 것이다.
3월 오픈 후 개관전으로는 심재연·윤정귀 작가를 초대한 ‘대한민국 솟대 명장 2인’전(3.1∼31)이 선보였으며, 4월에는 ‘자연과 상생’이라는 주제로 강성원 사진전(4.1∼30)이 성황리 진행됐다.
개관전으로 솟대를 택한데는 국내 솟대 중 예술성이 가장 뛰어난 곳이 강릉 진또배기 솟대와 함께 화순 동복 가수리 솟대가 꼽히고 있는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취지였다. 실제 전시 당시 가수리 일부 주민들이 와서 전시를 관람했다고 한다. 화순군의 솟대에 대한 관심이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솟대는 다산과 풍요, 안녕을 기원하는 상징인 만큼 뜻도 매우 긍정적이어서 전문 거리 구축 등을 통해 솟대에 대한 중요지점을 이루고 있어 그 가치를 살려 나갔으면 하는 것이 박 작가의 생각이다.
이어 하반기인 오는 9월에는 강병주 솟대작가전, 10월에는 ‘사진의 형식이란 무엇인가’라는 타이틀로 김병훈 사진전, 11월에는 ‘꽃’이라는 주제로 박유심 도예전이 잇따라 예정돼 있다.
박주오 작가는 “여기가 폐광진흥지역이어서 폐광촌에 작은 문화의 한송이 꽃을 심으려고 이곳에 왔는데 갤러리 운영과 관련해 쉽지 않다. 아직은 문화적 격차가 있지만 동네 주민분들이 좋아해 주신다”면서 “하지만 마을주민들과 출향민들의 추억이 서린 공간인데 원형을 보존했다고 눈물까지 흘려 원형보존 선택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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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과 사무실, 원데이 클래스 및 무등산이 조망되는 야외 공간이 마련됐으며, 자전거나 전화, 낫, 삽 등을 소재로 한 뷰 포인트가 군데 군데 구축돼 방문객들이 전시를 보고 난 뒤 또 다른 즐길거리를 제공하고자 했다. 뷰 포인트는 버려진 낫 두개를 활용해 ‘꿈’이라는 글자에 액자까지 만들어 눈길을 끌었으며, 그 인근에 맥문동을 식재해 꽃이 피게 되면 한껏 더 멋드러진 풍경을 연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앞서 눈에 들어오는 갤러리 입구 박 작가의 사택 담장은 아름답게 연필을 형상화하는 등 조형미를 십분 살려내고 있어 방문객들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는 볼거리의 하나다.
갤러리 휴의 대표인 박주오 작가는 광남일보 월간매거진 전라도인 2020년 2월호에 아트인으로 소개된 바 있다. 장성 청한갤러리 대표를 맡고 있던 무렵 인터뷰를 통해 조명했었다. 박 작가는 고향 사진을 30년 넘게 천착하면서 이 분야 대가로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에 옛 탄광촌에 갤러리를 열어 본격 운영에 들어간 만큼 갤러리 휴가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는 산촌에서 미술문화 진작은 물론이고 문화소외 지역에서 주민들의 예술에 대한 거점을 이뤄낼 수 있을지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