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영령들 ‘한’ 달래고 치유의 시간 가졌으면 해요”

[예술인플러스]광주 출신 세계적 안무가 주재만
시립발레단 컨템포러리 발레 ‘DIVINE’ 안무 창작
1996년 프랑스 바뇰레 국제무용제 최우수 무용수
컴플렉션 발레단 전임 안무가·포인트 파크대 교수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3년 08월 30일(수) 17:22
(2023 7월 122호=글 김민빈 기자) “춤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이죠. 이번 작품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영혼들에게 감사하고, 숭고한 가치를 아름답게 승화시키고자 합니다.”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광주시립발레단의 컨템포러리 창작발레 ‘DIVINE’의 주재만 안무가는 작품에 임하는 소감을 이같이 전했다. 이번 작품은 광주예술의전당의 재개관을 기념하는 발레단의 제134회 정기공연으로 오는 14일과 15일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주 안무가는 미국과 유럽 등 전세계에서 활약하며 주목받고 있다. 1996년 프랑스 바뇰레 국제 무용 축제에서 무용가상을 수상하고 뉴욕 컴플렉션 컨템포러리 발레단 수석 무용수를 역임, 현재 뉴욕을 중심으로 컴플렉션 발레단 전임 안무자 겸 발레 마스터이자 미국 펜실베니아 피츠버그 소재 포인트 파크 대학 발레 교수로 활동 중이다.
그런 그가 광주 출신이라는 것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꿈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 이후 30여년 만에 고향 땅을 밟았다고 한다.그와 광주시립발레단의 협업은 지난해 박경숙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과의 인연으로 이뤄졌다. 박 예술감독이 ‘제12회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그가 와이즈발레단과 협업한 작품 ‘Vita’를 관람한 후 깊은 인상을 받아 안무를 맡아줄 것을 제안한 것.
“작품을 맡고 처음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습니다. 태어난 곳에 와서 광주시립발레단과 작업하게 돼 기쁘기도 하고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쉬운 소재가 아니다 보니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도 느꼈죠.”
그는 이번 작품을 위해 당시 느낀 감정과 생각, 이후 살면서 겪은 경험을 되살리고 다큐멘터리 등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1980년 5월 당시 9살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의 기억은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다. 부모님 차를 타고 가면서 본 폐허가 된 거리, 어른들의 걱정스런 대화 소리, 늦은 시간 사람들의 발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 등을 기억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5·18민중항쟁 하면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와 감정들을 작품에 투영시켜 안무를 창작했다. 데모하는 시민들, 힘없이 쓰러져있는 사람들 등 주제에 대한 이미지와 고통과 분노, 상처와 희망 등 여러 감정을 바탕으로 감성적인 음악과 시네마적인 무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도록 했다.
“정해진 스토리 라인이 있는 게 아니라 5·18을 겪으면서 느꼈던 수많은 감정을 무용수의 동작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관객들은 각자의 생각을 투영하고 무대에 더 가까이 이입해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시립발레단의 창작발레 'DIVINE' 연습현장

주 안무가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춤 등 예능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춤추고 노래 부르기를 즐겨하는 모습을 본 그의 어머니가 발레학원에 데려간 것이 시작이었다.
“어머니를 따라 우연히 무용학원에 가서 발레 레슨을 받고난 후 바로 마음을 빼앗겼죠. 그때부터 부모님께 발레가 너무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어머니는 그런 그를 위해 새로 일자리를 구해가면서 발레 레슨을 시켰다. 헌신적인 어머니의 모습은 그에게 더욱 동기부여가 됐고,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에 몰두했다.
단국대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그는 재학 당시 1995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수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이듬해인 1996년 프랑스 바뇰레 국제 무용 축제에서 최우수 무용수상을 거머쥐며 실력을 인정받고 미국 뉴욕으로 떠나 활동했다.
2009년에는 미국 그레이스재단으로부터 안무가상을 받으며 안무가로서 입지를 다졌고, 이후 국제무대에서 세계적인 무용수들과 작품을 창작해왔다. 컴플렉션 컨템포러리 발레의 주역 무용수와 부예술감독을 역임하고 동 발레단의 전임안무가이자 발레 마스터로 활동하며 ‘Surface’, ‘Circular’, ‘Flight’ 등 다수의 작품을 선보여왔다. 지난 2021년에는 와이즈발레단과 협업한 작품 ‘Vita’로 코리아댄스 비평가초이스 어워드와 한국이데일리 문화대상을 수상해 주목받았다.
그가 안무가로서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인간적인 면이다. 무용수와 완벽한 교류를 이룸으로써 자신이 생각하는 춤을 무용수들이 표현해낼 수 있다는 시각이다. 단순히 동작을 알려주고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소통이 이뤄져야 무용수와의 호흡이 완성되고 관객들도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최고의 작품이 탄생한다는 설명이다.
“완전히 만족하는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무용수와 정신적 교류가 통해야 해요. 그럴 때 작품의 가치가 높아지죠. 이번 작품 ‘DIVINE’은 특히 그런 점이 더욱 중요해요. 정신이 비어 있는 동작을 하면 가치가 떨어지죠. 그건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제목 ‘DIVINE’은 ‘신성한’, ‘거룩한’ 등의 의미로, 폭력과 불의에 항거해 목숨을 바친 세상의 모든 고결한 희생을 아우른다. 그는 작품 해석을 관객들 상상에 자유롭게 맡기고 싶다고 밝혔다. 미술작품을 보면 느끼는 게 다르듯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낼 수 있으리라 본다. 거리를 두고 공연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무대 안에 동화돼 같은 공기를 마시며 진정한 교류가 이뤄지길 바란다.
“5·18 관련 영상이나 콘텐츠를 보면 너무나 처절하고 슬픕니다. 이번 공연으로 세상을 떠난 영령들과 아직까지 슬퍼하는 많은 분들이 모두 모여 한을 달래고 치유의 시간을 가졌으면 해요. 슬퍼만 하기 보다는 그들의 희생에 감사하고 소중함을 느끼면서 미래로 나아가길 바라죠. 또 관객들이 극장에 앉아서 공연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완전히 동화돼 즐기길 바랍니다.”
끝으로 그는 광주에서 같은 꿈을 꾸고 있는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갖고 도전했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남겼다.
“저는 고향 광주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광주에서 무용을 배울 때 너무나 훌륭한 분들이 많았고 또 무용 뿐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 등 여러 예술 장르에서 대단한 분들이 많이 배출됐죠.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하잖아요. 저는 가방 하나만 들고 뉴욕으로 무작정 떠났습니다.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끝없이 배우고 노력하길 희망합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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