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정치인재 키울 토양 마련에 힘써야

[커버스토리]박주선 대한석유협회 회장
법조인 출신 전 국회부의장 16·18·19·20대 국회 활약
참여정부서 두번이나 송사 결국 무죄로 풀려나
“부족하더라도 보완해 키워주는 정치지형 절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4년 07월 29일(월) 16:36
(2024년 1월 128호=이성오 기자)
2023년 끝자락에 호남의 정치 원로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을 만났다. 법조인 출신의 박 전 부의장은 ‘국민의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법무비서관을 역임했다. 이어 16대, 18대, 19대, 20대에 걸쳐 네 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돼 활약했으며, 20대 국회 전반기에는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박 전 부의장은 지난해 대선에서 윤석열 대선후보를 지지했고, 현재는 대한석유협회장을 역임 중이다. 2024년은 고 김대중 대통령이 탄생한지 100년을 맞는 해이다. DJ를 지근거리에서 모신 그에게서 정치 후일담과 호남정치가 걸어온 길을 들었다.

DJ가 발탁한 인재
1998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의 일이다. 당시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 회장에게 “법조계 고위 간부 10명 중 8명이 ‘사법정의에 대한 소신과 강단이 있는 사람’이라며 추천했다. 함께 DJ를 훌륭한 대통령으로 만들어 보자”고 권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DJ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데다, 민주 투사였던 DJ가 굉장한 권위주의자이고, 독선적인 지도자가 아닐까 우려해 사양했다.
김 실장은 계속 강권했다. 박 회장은 “저는 검찰에서 훌륭한 검찰을 만들어 김대중 대통령이 훌륭한 평가를 받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 실장은 “큰 시야를 가지고 직접 대통령을 보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50년 만에 정권교체로 들어선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도 부합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당시 검찰은 정권교체로 인해 검찰에 어떤 변화가 닥칠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입장이었기에 박 회장을 청와대로 가라고 미는 상황이었다. 안팎에서 밀고 당기니 박 회장으로는 공직의 옷을 벗지 않는 한 거부할 수 없는 지경이어서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은 인수위 사무실로 박 회장을 불렀다. 첫 만남에 김 당선인은 “박주선씨는 말이오. 호남 출신 공직자들은 역대 영남 정권에서 소외와 차별을 받았다고 불평불만이 많은데, 당신은 무슨 비결로 검찰 요직을 다 거쳤습니까? 호남사람으로서 백이 뭐요?”라고 물었다. 박 회장은 “모든 정부 부처는 원칙과 기준을 세운 다음에 정의에 입각해 행정을 하고 인사를 하는데, 법원과 검찰은 아무래도 직접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다보니 그런 원칙과 기준을 준수하고 정의를 세우는 데 좀 더 철두철미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반사이익을 얻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DJ는 “당신이 그렇게 요직을 두루 거친 것처럼 앞으로 인사를 할 때 능력과 자질, 인성을 중심으로 하세요. 지연이나 학연, 혈연 이런 사적인 요소는 절대 고려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박주선이하고 이야기하라”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제1 고충은 김 대통령을 십수 년에 걸쳐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추종해온 사람들에 대한 인사였다. 사실 DJ가 네 번이나 대선에 출마해 마침내 당선되기까지 그 사람들의 충성심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 대다수가 새 정부에서 일하려 하니 자리다툼이 상당했다. 박 회장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압박이었다. 더구나 당시는 IMF 체제 국가 위기상황에 실업률이 높았다. 박 회장은 그들을 모두 채용하기보다는 능력과 자질을 중심으로 인재를 선발해 구제금융체제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김대중 대통령께 이런 생각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창업과 수성(守城)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동교동계의 충성과 헌신에 대해서는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은(報恩) 차원에서 능력과 자질, 경륜을 고려하지 않게 되면 정권교체의 의미에 대해 국민이 굉장한 회의를 가질 것이고, 많은 비난을 받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때문에 대통령께서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것은 별도로 하더라도 국가 인사를 하는 데 있어서 동교동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대우와 배려를 해서는 안 되고, 동일한 인사 선정 기준에 따라서 채용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동교동계를 무조건 배척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게 맞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세요”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인사와 관련해서는 잡음을 안 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실제로 국민의 정부 인사에 대해서는 역대 정권에 비해 잡음이 적었다. 그런데 동교동계 일각에서 ‘우리가 어떻게 세운 정권인데 이렇게 홀대하느냐’, ‘굴러온 돌(박주선)이 박힌 돌을 뽑는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대통령께 하소연하고 당을 통해 청와대에 보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 대통령은 ‘동교동계 불평불만이 너무 크다. 좀 배려하라’거나 그들을 배려한 추천 명단을 내밀 수도 있는데,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사 얘기만 나오면 DJ는 “박주선이 하고 이야기하라”고 당 대표나 원내대표, 사무총장 이런 사람들한테 잘라 말했다.
그래서 당 지도부와 만나면 “대통령께서 당신하고 이야기하라고 했다”고 말을 꺼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언제든 다른 말씀이 없었다. 그저 “당하고도 좀 잘 지내세요”라고만 했다. ‘50년 만에 정권을 바꾼 대통령이 국정에 임하는 자세가 저렇게 냉정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스스로 옷깃을 여미며 보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복궁이 무너지면 대원군 책임이냐?”
지난 2003년 2월 ‘남북 정상 회담 관련 대북 비밀 송금 의혹 사건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 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의결을 앞두고 있을 때다. 노무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2002년 12월 대통령선거에 당선돼 취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새천년민주당 내에서도 특검을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박 회장은 당시 대북송금특검법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을 정하는 의원총회에서 발언권을 얻어 이같이 말했다.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에 이어 민주 진영의 두 번째 집권이고,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을 승계해 정권이 재창출됐는데, 이 법은 사실상 집권당의 전임 대통령을 특검해야 하는 법입니다. 비록 집권당이 아니더라도, 전임 대통령을 특검해야 할 정도 사안이라면, 이건 국가 차원에서 특검의 결과가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를 먼저 판단하고, 그걸 분석한 뒤에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섰을 때 수사해야 합니다. 지금 방북을 하려면 언론사들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 예술단체에 이르기까지 뒷돈 주고 방북하는 것이 사실상 공공연히 알려진 비밀이 아닙니까. 그런데 대한민국 대통령이 적대국인 북한에 역사적인 방문을 하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강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설령 돈이 전달됐다고 치더라도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발전한 계기를 잡았는데 특검을 해서 찬물을 부어 남북 관계가 또다시 동결되면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박 회장은 이어 “돈이 전달됐다는 의혹은 시간이 지나면 방북의 성과를 폄훼하거나 방북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을 평가하는 사후 자료로 나올련지 모른다. 하지만 방북은 남북 화해무드를 조성한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돈이 오가는) 나쁜 관행을 깨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노력을 해야 될 거고, 북한도 동참하도록 해야 하는데, (한국이) 일방적으로 특검만 하게 되면 결국 우리 국경만 훼손하고 남북관계는 더 악화하고 또 국가적인 수치가 된다. 그래서 백해무익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경복궁이 지어진 지 200년 정도 지났다. 그런데 만일 경복궁이 무너지면 그 경복궁을 신축한 대원군의 잘못이냐 아니면 관리를 잘못해 무너진 당대 정부의 잘못이냐.
결코 대원군한테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이런 사태가 일어났으면 당대 정권이 책임을 지고 국가를 위해 현명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박 회장의 발언으로 총회장 분위기는 반전됐다. “특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려고 그랬는데 박주선 의원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해선 안 되겠다”는 얘기들이 줄을 이었다. 노무현 대통령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김경재 의원도 “특검을 하자고 주장하려 했는데 박 의원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해서는 안 되겠다”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박 의원 지역구가 어딘지 아느냐”며 “제 지역구는 전남 순천인데 저 똑똑한 의원이 바로 옆에 전남 보성”이라고 했다. 한화갑 대표는 의원총회를 마치고 총회장을 떠나면서 “발언을 보니까 선생이네, 선생”이라고 말하며 “지금까지 DJ 외에는 누구에게도 선생이라는 칭호를 써본 일이 없는데 오늘부터 박주선 선생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민선 초대 용산구청장을 지낸 설성웅 의원은 “박 의원, 오늘부터는 나이 많은 꼬붕이 박 의원을 오야붕으로 모실 테니까 받아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주도로 의결 처리된 특검법은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통과시켰다. 이 사건은 호남 정치세력이 민주당의 주류에서 밀려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박 회장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DJ로부터 독립하고 DJ보다 더 우뚝 서야겠다는 생각 끝에 일어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회고했다.

DJ 뒤를 이을 인재
2003년 3월14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법무부와 대검찰청 업무보고를 받았다. 박 회장은 당시 민주당 제1 정책조정위원장으로 참석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노 대통령의 측근인 염동연, 이광재, 안희정 등이 나라종금과 연루돼 있다는 기사가 연일 신문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마친 검찰총장에게 “지금 언론에서 나라종금과 관련해 검찰의 재수사 여부에 대해 기사화되고 있는데 수사 계획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검찰총장은 “나라종금 사건은 3년 전에 종결했습니다. 더 이상 수사할 내용도 없고, 수사할 계획이 전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나는 내 측근들이 연루돼 있어 검찰이 수사를 착수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앞으로 수사할 계획이 전혀 없단 말이죠?”라고 재차 물었다. 이에 대해 검찰총장은 “전혀 수사할 내용도 가치도 없으며, 계획이 없습니다”라고 재차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 앞으로 수사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도 되는 거죠?”라고 되물었고, 검찰총장은 “예”라고 대답했다.
그해 5월 어느 날, 박관용 국회의장은 당시 초선 국회의원이었던 박 회장의 의원회관 사무실에 전화했지만 부재중이어서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사무실에 돌아온 박 회장은 박 의장에게서 두 차례냐 전화가 왔다는 얘기를 듣고,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박 의장은 “IPU(국제의원연맹) 총회가 열리는 칠레 산티아고를 함께 가고 싶은데, 갈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박 회장은 “의장님께서 데려가 주시면 제가 성심을 다해서 모시겠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박 의장은 “여보! 나는 당신하고 당도 다르고 6선 국회의원이고 당신은 초선밖에 안 되잖아, 근데 내가 함께 가자고 당신한테 전화를 두 번이나 해서 사정사정해야 되는 거야?”라며 “지금 당신 당에서 거기 좀 데려가 달라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줄 서 있는지 아세요?”라고 말했다.
당시 국회 사무총장하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함께 산티아고로 갔는데 박 회장은 ‘박 의장이 일면식도 없는 나를 왜 여기 끼워 넣어 데려가려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마침 호텔에서 박 의장이 차 한잔하자고 그를 불렀다. 박 의장은 “내가 역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많이 아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박 의원 이야기 안 하는 사람이 없더라. 과연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고 지켜봤는데, 국회에서 발언하0고 활동하는 걸 보고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신과 이야기나 좀 하려고 선정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당신 지역구가 지금 호남에서도 전남 보성·화순으로 알고 있는데 거기는 좀 멀기도 하고 시골이잖아. 대신 도시인 광주 같은 곳에서 국회의원을 하는 게 좋겠다. 그런 곳에서 국회의원 하면서 DJ, YS처럼 큰 꿈을 한 번 꾸길 바란다”라고 충고했다.
박 의장은 또 “호남에 3대 천재가 있다는데, 당신은 천재에다가 얼굴도 잘생겼고 말도 잘하고 특히나 심성이 아주 품격 있는 사람으로 평가하더라. YS나 DJ가 서울로 올라올 수가 없어서 안 올라온 게 아니야. 거기 지역구는 지역행사를 안 가더라도 중앙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양해해 준다. 서울에서 정치하면 대통령 못 한다. 맨날 민원인들 만나야 하고 애경사 찾아가야 해. 지역구 개발을 다시 해 거기(광주)에서 한번 시작해 보라”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산티아고에 머무르는 동안 한국에서 기자들 전화가 빗발쳤다. “당신 나라종금에서 돈 받은 일 있느냐”고 물었고 “받는 일 없다”고 답했다. 박 회장은 “지난 3월 검찰 업무보고에서 나라종금 사건은 3년 전에 일단락돼 수사 안 한다고 그랬는데 왜 나한테 그걸 묻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박 의장은 귀국 후 며칠 뒤 그를 의장실로 불렀다. 갔더니 “당신 지금 완전히 표적이 돼 있다”며 “당신 어디 다니면서 대통령 한다는 이야기 한 적 있느냐?”고 물었다. 박 회장은 “초선 국회의원이 어디 가서 무슨 대통령 이야기를 하고 다니겠습니까” 했더니 박
의장은 “싹을 잘라내기 위해 수사한다던데…”라며 노무현 정부에 깊숙이 관여했던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불현듯 당시 이수일 국가정보원 제2차장이 그해 1월에 이런 얘기를 전한 것이 떠올랐다. 이수일 차장은 “이번에 국정원 차원에서 ‘호남에서 DJ 뒤를 이를 인재가 누구냐’를 묻는 여론조사를 했는데 압도적으로 당신이 나왔다”며 “그런데 이렇게 되면 DJ가 모진 풍파를 당한 것처럼 정치권에서는 뭐랄까 중상이 많을 텐데… 아무튼 DJ처럼 꼭 다 이기고 헤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해 3월에도 이 차장은 “국정원에서 인사가 돼, 떠나게 됐다”며 “박 의원에게는 꼭 인사를 드리고 와야 하는데 의원회관에 가면 그 방만 들리기도 어려워 퇴임 인사를 전화로 한다. 지난 1월에 말씀드린 대로 우리 국정조사 분석한 내용이 꼭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믿고 있을 테니까 꼭 그렇게 우뚝 서는 정치인이 돼 달라”고 했다. 이 차장에게 그 말을 들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얼마 후 박 의장이 그에게 같은 얘기를 전해 준 것이다.
그해 6월 검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혐의로 박 회장에게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법원이 기각했다. 검찰은 나라종금 안상태 사장이 선거 자금으로 쓴 돈을 내가 받은 걸로 둔갑시켜서 그것도 정치자금이 아니고 사전 뇌물 수수 혐의
로 엮으려 했다. 하지만 이듬해 3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는 박 회장의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박 회장에게 죄가 있다면 검찰이 마땅히 항소해야겠지만, 항소를 포기해 1심이 확정됐다.
하지만 사법부의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2005년에는 ‘현대비자금’ 3000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박 회장을 기소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영수증 처리가 돼 있고 대가 관계로 받은 자금으로 보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박 회장은 참여정부에서 두 차례나 기소됐지만, 두 차례 모두 무죄로 풀려난 것이다. 이 전 차장은 “내가 예측한 대로 이런 시련과 풍파가 올 것을 염두에 두고 조심, 조심했어야 하는데…”하면서도 “정치권이라는 현실이 그렇찮느냐. 그렇지만 끈기 잃지 마시고
꼭 DJ처럼 이겨내고 우뚝 서 달라”고 당부했다.
박 회장은 2008년 7월12일에 민주당 최고위원 자격으로 당 지도부와 함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봉화마을로 내려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 점심에 모두가 모인 오찬장에서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에게 두 차례의 무고한 송사가 이어진 이유를 따져 물었다.
“정치적으로 표적으로 삼고, 진실을 왜곡해서 수사했기 때문에 정치탄압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두 번이나 구속하고 수사하는 검찰과 사법부가 모두들 한결같이 ‘윗선의 지시’라고 했는데, 이 사태의 최고 배후는 노 대통령이 아닙니까?”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박 의원님 미안하게 됐습니다. 민주당과 박 의원님을 구별했어야 했는데, 참 잘못됐습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지 않겠습니까. 제 집에서 소주 한잔하면서 회포를 푸십시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그 일에 대해 회고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참 나쁜 사람들이야. 어떻게 검찰을 개혁한다고 하면서 검찰을 이용해서 이렇게 할 수가 있느냐 말이야. 수사 관여한 사람들 대법관 시키고, 영전, 승진시키고….”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이 모든 게 어떻게든 민주 진영의 주류를 형성해 온 호남세력의 뿌리를 뽑고, 차기 대권주자가 될 박 회장을 견제하려고 시작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비서실 법무비서관 시절, 김대중 대통령(오른쪽 세 번째) 주재 사법개혁특위 의원 간담회에 참석한 박 회장(오른쪽 네 번째)


인재를 발탁하고 키울 토양을 마련해야
박 회장은 “호남이 진정으로 전 세계가 높이 평가하는 김대중 대통령을 제대로 평가받게 하고 제대로 존경받게 하려면 동서화합의 길이 마련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DJ를 호남에다가, 민주당 울타리에다가 가두는 꼴이 돼서 너무 안타깝고 한심하다는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지난 2001년 중국을 방문해 당시 장쩌민(江澤民) 주석을 만났을 때 얘기를 들려줬다. 장 주석은 박 회장에게 당시 수개월 후면 대통령에서 퇴임하는 DJ에게 전해 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국가 체제가 다르고 직접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보지도 않았지만, 세계 지도자 중에서 김대중 대통령만큼 훌륭한 지도자는 드뭅니다. 임기를 마치시면 꼭 중국을 방문해 주십시오. 제가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DJ 정신을 물려받은 양 호도하고 있는데, 그만큼 DJ는 폄훼를 당하는 셈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박 회장은 말했다. 2024년 탄생 100주년에는 진정한 DJ 정신과 가치와 철학이 현창되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DJ가 대통령직을 내려놓은 뒤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호남정치 복원’이라는 어젠다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오랜 소외와 낙후를 경험한 호남 지역민들로는 DJ처럼 이 어려운 상황을 앞장서 돌파할 새 지도자를 찾아온 것이다. 특히 대북송금특검과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로 호남은 수십 년을 오롯이 지지해온 민주당의 안방에서 밀려나면서 이런 염원은 더 간절해졌다. 호남 지역민들은 호남 정치세력들이 다시 개혁 진영의 주도권을 쥐고 앞장서 이끌 것을 고대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간절함으로 지난 20대 총선에서 호남은 민주당을 이탈해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정치적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호남정치 복원에 대해 박 회장은 “우선은 정치인이 자질과 능력을 갖추는 것이 먼저고, 두 번째는 그런 인재들을 발굴해서 좀 부족해도 보완해서 키워주는 유권자들이 절실한데, 그 같은 모습이 지금 안 보여 좀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비록 2015년에 민주당을 탈당했지만 지금의 민주당 노선과 방향 가치에 대해 동의할 수가 없다. 김대중 철학과 가치로 비춰볼 때 완전히 다르다고 본다”며 “호남은 정당에 얽매기보다는 인재를 발탁하고 키워 낼 토양을 마련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21대 호남 국회의원들은 민주당의 주류를 차지한 수도권 의원들 틈바귀에서 기를 펴지 못했다. 최고위원 경선 때마다 호남 단일 후보를 내세워 권토중래를 노렸지만 세 번 모두 실패했다. 호남이 사실상 정치의 변방으로 추락한 것이다. 이제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총선거를 불과 3개월 여 앞두고 있다. 호남은 어떤 선택을 통해 호남정치 복원에 한 걸음 다가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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