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말 성리학 거장 기정진 건립·강학 [문화재 다시보기]장성 고산서원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24년 09월 01일(일) 1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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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군 진원면 고산리에 위치한 고산서원(전남도 기념물 제63호)은 조선 성리학의 6대가(서경덕, 이황, 이이, 이진상, 임성주, 그리고 기정진) 중 1인으로 추앙받는 노사 기정진이 고종 15년(1878)에 지은 서원이다. 처음 지을 때는 ‘담대헌’이라 이름 붙여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었다. 이후 후손들이 1924년 중건했으며, 1927년에 고산서원이라는 편액을 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노사 기정진(1798~1879)은 19세기 전라도 지역뿐만 아니라 멀리 제주까지 전국적인 후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성리학자이다. ‘노사선생연원록’이라는 제자록에 따르면 그에게 글을 배운 제자가 600여명에 이르고, 그들의 제자들까지 합쳐 6000여명에 이르는 등 조선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대규모 학연을 만들었다고 한다. 기정진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지력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네 살 때 효경과 격몽요결 등을 읽었고, 이때부터 5~6년 동안 소학, 대학연의를 비롯한 경서와 강목, 춘추 등의 역사서를 두루 공부했다. 그는 기억력이 매우 좋아 보는 것은 모두 외웠다고 한다. 그러나 다섯 살 때 천연두를 앓아 왼쪽 시력을 잃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노사는 조선을 대표하는 마지막 유학자로 꼽힌다. 그는 81세의 생애 동안 거의 벼슬하지 않고 학문에만 몰두해 조선 유학의 중요한 주제인 주리론(主理論)을 심화시켰다.
기정진의 주요 저작은 40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 노년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기정진의 학문은 이(理)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이일원론(理一元論) 관점의 주리론으로 요약된다. 그는 특정한 사제 관계나 학맥에 의존하지 않고 성리학의 근원인 중국 송대의 학문을 직접 연구해 독자적인 견해를 제시했다고 평가된다.
그의 주요한 저작은 ‘납량사의’, ‘이통설’, ‘외필’ 등이 꼽힌다.말년에 집필한 ‘이통설’에서 그는 주리론을 좀 더 심화시켰는데, 그는 이(理)의 절대성과 영원성을 전제하면서 인간과 사물의 모든 현상은 아무런 막힘이 없는 이의 오묘한 운동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이런 학설은 당시 조선 성리학의 대표 인물이던 이이의 주기론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많은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의 학문은 그러나 이념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 근대의 격동에 대응한 주요한 흐름인 ‘위정척사 운동’을 태동시켰다. 그의 제자들이 구한말 호남의병의 본류가 된 것이 좋은 예이다.
그는 이념과 현실 모두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조선 성리학의 마지막 거장으로 평가된다.고산서원에 소장돼 있는 노사선생전집 및 답문류편 목판은 고종 39년(1902)에 그의 저서를 목판에 새긴 것으로, 문집은 653매, 문류편은 209매로 구성돼 있다. 1999년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14호로 지정된 중요문화재이다.
고산서원은 노사뿐만 아니라 이최선·기우만·조의곤·김록휴·조성가·정재규 등의 위패도 함께 모시고 있다.현재 경내에는 사당인 고산사를 비롯해 강당, 동재인 거경재, 서재인 집의재, 내삼문, 외삼문과 장판각 등의 건물이 있다. 장판각이 기정진의 문집과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2026.10.24 (토) 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