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특유의 문화와 거리 풍경은 여전했다 [문득여행]일본 도쿄 명소 가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24년 09월 04일(수) 17: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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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 현상은 국내 여행 트렌드를 바꿔놓고 있다. 국내에서 하는 여행이 오히려 비용이 더 들어가는 현상 때문에 해외로 피서를 떠나는 사람들이 대폭 늘고 있다. 최근 제주에서 민박업을 하고 있는 한 인사는 제주로 와야 할 관광객들이 제주도를 외면한 채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바람에 제주도 관광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더욱이 한라산 중산간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관광단지 사업을 강행하며 난개발 논란이 불거지는 등 민박업자들의 분노를 불러오고 있는 보도까지 알려진 상황. 제주도 입도는 피서철 성수기이지만 10% 정도만 늘었다고 한다.
필자 역시 국내보다는 여러 여건에서 따져볼 때 해외로 다녀오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어서 자꾸 바다 건너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항공료의 경우 일본행은 20만원 전후대로 비교적 저렴해 차라리 국내로 가느니 일본을 다녀오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도쿄하면 일반 관광으로는 도쿄타워가 1순위로 꼽힌다. 예술적으로 접근하자면 우에노 공원에 모여있는 문화예술시설들이 1순위가 아닐까 싶다. 이곳에는 미술관과 박물관 등이 집결해 있다. 우선 생각나는 곳만으로 국립서양미술관이나 도쿄도미술관, 우에노모리미술관, 도쿄예술대학 대학미술관, 도쿄문예회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국립서양미술관은 모네 특별전 등 전시를 여는데 방문했을 때는 교과서에서 접한 클로드 모네의 ‘수련’(1916) 같은 작품이 선보이고 있어 이목을 사로잡았다. 교과서에 나옴직한 작품이 눈앞에 있다 보니 ‘현타’가 왔다. 예술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는 일본이 우리보다 얼마나 많이 앞서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클로드 모네 외에 그날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작품은 카미유 피사로의 ‘대화’(1881)를 비롯해 외젠 부댕의 ‘도빌해안’(1867), 귀스타브 쿠르베의 ‘파도’(1870),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의 ‘귀도 카발칸티의 유령과 만나는 테오도르’(1783), 위베르 로베르의 ‘문테카발로의 거상과 성당이 보이는 공상 속의 로마경관’(1786),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숲에서’(1880), 호안 미로의 ‘회화’(1953), 폴 시나크의 ‘생 트로페항구’(1901∼2) 등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국내 공공미술관 등에서 보여주는 작품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국내 미술관은 국내용만 열심히 기획하는 듯한 인상이지만 이곳은 글로벌하게 작품을 선보이고 있어 우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더욱이 작품 명제에 일본어와 영어, 중국어, 한국어가 명기돼 있어 감상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고, 일본에서 우리의 존재가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한편으로는 흐뭇했다. 공원 규모가 53만평에 이르고, 벚꽃이 피는 철에는 200만명이 방문한다고 하니 핫플 중의 핫플인 셈이다.
국립서양미술관은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건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59년에 개장돼 르누아르, 반 고흐, 피카소, 모네 등 유명 화가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건물 외부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역시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우리도 이들처럼 문화예술시설이 모였고, 안을 장식하는 콘텐츠가 세계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들의 수준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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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적 진지함을 벗어나 증상사(조죠지)와 도쿄타워를 둘러볼 것을 주문한다. 도쿄타워는 파리 에펠탑을 모델로 한 것이지만 오늘날 일본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전망대에서 조망한 도쿄만과 항만의 풍경, 거기다 석양무렵과 야경은 일품이었다.필자는 증상사를 먼저 둘러봤다. 증상사는 일본어로 조죠지라 발음된다. 조죠지는 일본 정토종의 본산으로 1393년에 건립됐다. 우리로 말하면 조계종 본산과 같은 것으로 이해됐다. 그러니 일본에서 얼마만큼 중요한 자리에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600년대 이후 에도막부의 보호를 받으며 대표적 사찰로 자리매김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다이몬역이나 오나리몬역에서 5분 정도의 거리에 소재해 있다. 모르고 가면 그냥 도심 큰 사찰(절) 쯤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을 터다. 이 사찰에서 2022년 암살된 아베 신조 전 총리 장례식이 그해 7월12일 열린 사찰이라고 하면 빠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에도막부 초대 쇼군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덕천가강)의 장례식 또한 이 사찰에서 거행됐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처음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밑에 있었으나 그가 죽은 뒤에 도요토미의 일족을 멸하고 전국을 제패해 에도 막부를 세웠다. 그가 남긴 명언들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이를테면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먼 길과 같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아라’거나 ‘모자라는 것이 넘치는 것보다 낫다’, ‘풀잎 위에 이슬도 무거우면 떨어지게 마련이다’ 등과 같은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이곳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 6명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전화를 면한 유일한 건축물로, 일본인들 입장에서 보면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는 씁쓸한 역사가 묻어 있다. ‘고려대장경 인쇄본’이 그것으로 1400년대 해인사에서 제작됐는데 일본 나라현의 승려가 가져간 것을 에도막부의 초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건네받아 조죠지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23년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해 논란이 일었다. 도쿄타워는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에 있는 탑으로, 프랑스의 에펠탑을 모방해 만들어졌다. 일본 전파탑으로 불리며 도쿄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다. 에펠 탑보다 33m가 더 높은 333m다. 서울의 롯데월드타워가 555m이니까 222m가 더 낮다. 4000t의 철강 구조물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철강 상당량이 6·25 한국전쟁에서 사용된 폐전차 90여대 분의 고철이 사용됐다고 하니 씁쓸한 이면이 아닐 수 없다.
전망대는 지상 150m 지점과 250m 지점에 설치돼 있다. 적색과 백색의 외관이 눈에 띄며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오사카의 신문왕이자 산케이 신문의 사장이었던 마에다 히사키치가 송신탑을 일원화하기 위해 건립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250m 지점의 전망대는 흔들림이 심하게 느껴져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지러운 도전이 될 수 있다. 도쿄 타워 안으로 진입해서는 아주 격식있는 의식과 몇 가지 절차를 따라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일본인 특유의 진지함 때문에 표정변화를 심하게 나타낼 수는 없었다. 다만 그들이 진지했기에 진지하게 그들의 의식과 절차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고 단순하게 평가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들의 문화이고, 삶이니 인정하면 그만이다.
이외에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도쿄 관광 1번지로 꼽히는 아사쿠사 소재 최대 사찰인 센소지를 우중기행했던 기억도 새롭다. 이 사찰은 연중 3000만명이 찾는다고 하니 그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생소했지만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 안에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는 그 어떤 언어보다 선명하게 가슴을 파고 들었다.
지면 관계상 도쿄를 속속들이 추천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없는 시간 쪼개서 방문할 요량이면 이런 코스가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다. 업무차 도쿄까지 갔더라도 단 한곳의 명소도 못보고 오면 아쉬움이 크지 않을까 싶다. 업무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번 도쿄는 중간에 코로나19가 끼어 있어 10여년만에 다시 찾은 것 같다. 도쿄에서 옛 추억 찾기는 어려웠으나 일본 특유의 문화와 거리 풍경은 여전했다. 우리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 다른 듯한 무언가가 싫지 않았다.

2026.10.25 (일) 15:49




















